효도보은행복

[스크랩] 독일에서 노인에게 자리 양보했던 경험

good해월 2010. 8. 14. 16:42

 

 ‘나이 계급’에 대한 글을 쓰고 댓글을 읽다보니 문득, 독일 여행 중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는 좌석 양보 문화가 한국적 예의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짧은 여행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일의 노인 공경은 분명 한국보다 한수 위입니다.

 

 뮌헨에서 트램을 탔을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두 분이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우리 부부가 앉은 자리 주변으로 왔습니다. 남편이 “자리를 양보하자”며 짐을 챙겼을 때만해도 전 바보같이 망설였습니다. ‘뭥미?’ 반응이 나올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남편이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서툰 독일어로 앉으라고 말하자, 예상과 다르게 훈훈한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노인들은 활짝 웃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앉아라’ ‘괜찮다’ 끈질긴 권유와 거절이 이어지고 결국 노인들이 승리(?). 완강한 거절에 못 이겨 우리 부부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다시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앉지도 않은 노인들은 웃으며 고맙다고 연신 감사를 전했고, 그들의 자녀분들도 함께 ‘땡큐’를 연발했습니다. 원치 않게 과묵 모드를 유지해야 했던 저는 어색한 미소로만 답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 주변 근육이 얼얼할 지경이었습니다.

 

 잘츠부르크성으로 가는 등산열차에서 좌석 양보가 재시도 됐습니다. 아들의 보호를 받으며 열차에 오르는 할머니에게 앉아있던 자리를 내어드렸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노인이 거절하지 않고 앉았는데 역시 난처할 정도로 과하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열차가 도착하자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아들은 공간을 만들어 나부터 내리게 배려해주기도 했습니다. 내리면서도 서로 고맙다는 말을 하던 장면이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이후로 몇 번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몸이 약한 노인에게 건강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특정 ‘문화가 아니라 상식’임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준다면, 그 배려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상식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독일은 철저하게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입니다. 제가 보지 못한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일도 일어날지 모르지만, 너무나도 많은 곳곳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느꼈습니다. 노인이 공경되는 이유는, 그들이 육체적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자녀가 꼬부랑 부모의 휠체어를 끌고 여행 다니는 풍경은 너무 흔해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 몸이 불편한 부모를 직접 모시고 다니는 자녀들의 효심도 감동적이지만, 산꼭대기라도 그 휠체어가 다 다닐 수 있게 도시가 설계돼 있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노인 뿐만 아니라 아이들, 장애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몸에 베어있습니다. 교통 약자인 보행자는 자전거를 탄 사람보다 보호되고, 자전거 이용자는 자동차로부터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됩니다. 제도적 보호를 넘어 인식 자체가 그렇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 가난한 자 등에 대한 국제 구제 활동에 독일이 항상 앞장서온 이유에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지 않나 싶습니다.

 

 “왜 한국은 지하철에서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 받아도 인사를 안 하냐” “임산부에겐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 서울에서 만난 한 외국인의 이런 질문에 대답을 못했던 것은 단지 영어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노약자석은 '배려가 아니라 권력'이라고 이해를 구하려다 짧은 영어로는 설명 할수 없을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동방예의지국. 이 말은 오히려 조롱의 농담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할 예의를 지키고 산다면 미소 지을 일이 얼마나 많아질까요. 양보하는 기쁨, 선행을 베푼 보람, 이런 것들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행복지수 좀 올라가지 않을까요?

출처 : Sad third baseman.
글쓴이 : 파란모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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