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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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두웨이밍 교수
“자연과 종교를 아우르는 포용적 인본주의가 세계를 이끌어야 합니다. 서구의 배타적 인간 중심주의는 한계에 이른 지 오래입니다.”
미국 내 동양학 연구의 중심지인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의 두웨이밍(杜維明·69·사진) 교수가 11일 내한했다. 그는 1996∼2008년 이 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두 교수는 12일 민족종교협의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대화의 문명을 향하여-지구화되는 세계’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11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두 교수는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서구의 계몽적 인본주의가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정신을 소홀히 했고 세속화로 흘렀다”며 “자연에 대한 공격성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동양, 특히 동아시아 문화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인본주의는 우주와 자연을 포괄합니다. 서구는 기독교적 가치에 맹목적인 데 반해 동아시아는 종교, 문화적 포용력이 뛰어납니다. 기독교와 불교, 유교적 가치가 공존하는 동아시아는 세계 문명의 모범입니다.”
그는 한국의 민족종교(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등)에 대해 “한민족의 토착신앙이 외세의 자극을 받아 19∼20세기에 조직화한 것”이라며 “민족종교는 지역문화의 이해와 문명 간 대화 연구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 베이징대에 머물며 인문학연구소 설립을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이 이미 한계가 드러난 서구의 합리성에만 기반을 둔 근대화에 몰두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중국 지도부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무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칠논쟁을 통해 본 퇴계의 인성론’ 등 여러 편의 퇴계학 관련 논문을 썼다. 이번 방한 전 한국의 지인들에게 1000원, 5000원, 5만 원권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율곡, 퇴계, 신사임당을 그린 지폐를 중국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한국의 인문학 존중 정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주의 등 동양적 가치만 강조하면 인권이 억압받고 권위주의에 맹종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지금 세계는 한 가지 사상만으로 지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문명 간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논어에 나오는 말처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세계문명의 당면 과제입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