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송윤세 기자 = '오라이~'를 외치며 버스 승객들을 태우고 내렸던 버스 안내원, 교묘하게 회수권 접어서 내던 까까머리 학생들, 짐을 한가득 싣고 장에 가던 할머니까지 30년 전 시내버스는 지금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시끌벅적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던 시내버스의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을까.
◇시내버스의 태동
6일 한국교통연구원, 서울시 등에 따르면 대구호텔 사장이었던 일본인 베이무라 다마치로가 일본에서 버스 4대를 들여와 1920년 7월1일부터 국내최초의 버스를 운행한 것이 우리나라 버스의 첫 역사라고 한다. 대구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팔달교, 동쪽으로는 동촌까지 운행했으며 정류소가 있었지만 중간에 승객이 손을 들면 정차해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노선과 버스정류소 등의 시스템을 갖춘 실질적인 최초의 시내버스는 1928년 4월22일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에서 20인승 마차형 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 투입한 경성부영버스라 할 수 있다. 이 버스의 노선은 경성역(서울역)에서 남대문, 조선총독부(광화문), 종로 등을 거쳐 경성헌병대(충무로)까지로 배차간격은 20분이었다.
그러나 1932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노면 전차를 운행하는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에 매각됐고,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경성전기는 버스이름을 경전버스로 바꾸고 전차노선과 차별화했으며 전차와 버스를 한 장의 승차표로 환승이 가능토록 했다.
위의 기록은 일제 강점기를 포함했을 경우이고 광복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1949년 8월16일 서울승합 등 17개의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아 273대가 운행을 시작한 것이 서울시 최초의 시내버스 운행이다. 서울시는 이 기록을 공식기록으로 간주하고 있다.
80년 전인 1931년에는 오늘날의 시티투어버스인 유람버스가 등장했다. 정원 16명의 좌석버스로 서울 주요 공원과 명승고적을 내려 구경하거나 차에 앉아서 구경할 수 있었으며 소요시간은 총 5시간이었다.
◇시내버스 산업의 발전
1950년대는 미군 폐차, 드럼통, 일본 중고 엔진을 이용해 수공업형태의 버스를 제작하던 시기였다. 쌍용자동차의 모체인 하동환공업사와 구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사가 생겨났다.
1960년대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자동차보험도 도입됐다. 1962년 신진공업사에서 개발한 16인승 버스는 1963년부터 대량생산을 했다. 또 같은 해에는 대형버스를 규격화했는데 중간과 뒷부분 2곳에 문이 있는 형태였다.
1970년대에는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행됐고, 1979년에는 좌석버스제도가 도입됐다.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도입되면서 앞문이 생겨났다.
1980년대는 서울 지하철 1~4호선 개통으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1위를 지하철에 내주게 됐다. 시내버스는 지하철 노선과 경합지역 노선을 줄이면서 외곽노선, 지하철 연계 등 노선이 다양해졌다.
1995년부터는 리어엔진형식의 버스도입이 의무화됐으며 앞문승차·뒷문하차 제도도입, 안내양제도폐지, 출입문 자동 개폐장치 등이 도입됐다. 또 버스 외부는 연하늘색 바탕에 진한 보라색으로 도색됐다.
◇추억의 토큰과 회수권에서 교통카드까지
1970년대 후반 정부는 버스산업 활성화와 버스교통 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 중 하나가 1977년 12월1일 도입한 버스 승차권인 토큰이다. 토큰제도는 승하차 시간의 단축과 현금 취급의 위험성 감소가 주목적이었다.
그런데 시민들이 버스요금 인상에 대비해 토큰을 사재기하는 일이 일어났고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두 가지 색깔의 토큰을 교대로 사용했다. 서울시는 1996년 교통카드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1999년 10월 토큰제를 폐지했고, 1983년 토큰제를 도입한 대구광역시는 불과 몇 년전인 2008년 7월에 폐지했다.
토큰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는 승객이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낼 때 동전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하기 위함이다. 또 회수권도 사용됐는데 어떤 학생들은 10장을 11장으로 잘라서 사용했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8장을 한세트로 대형화되기도 했다. 회수권은 초·중·고·대·일반·경로 등으로 구별됐다.
이후 1996년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서울특별시의 주도로 '버스카드'가 서울시내 모든 버스에 최초로 사용됐다. 이는 특정 교통 시스템에서의 전자토큰 형태로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별도의 '지하철카드'가 필요했다.
실질적으로 서울의 버스카드가 호환성 있는 교통카드가 도입된된 것은 2000년부터다. 이때부터는 서울의 지하철카드로도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본격적인 통합교통카드 시대가 열리게 됐다.
◇굴절버스와 이층버스 등 다양한 시도
1958년 5월부터 8월까지 서울 시내 6개 노선에 굴절버스 3대를 시범 운행한 적이 있었는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로 조기 퇴출당했다. 그러다가 2004년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도입에 맞춰 20대의 굴절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가의 구입·유지비용, 낮은 수송 효율성, 소음, 엔진 출력문제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일부 버스만 운행되는 실정이다.
런던이나 홍콩에만 이층버스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시티투어용 이층버스가 아닌 정규 이층버스가 도입된 적이 있었다. 1991년에 과천~서울시청 구간에 시범 도입을 했으나 육교, 신호등, 표지판, 전선, 가로수 등을 피해서 노선설계를 하다 보니 효율성이 매우 낮았다. 지금은 서울, 부산등에서 시티투어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시행착오 경험은 우리나라 버스 정책을 발전시키고 버스산업을 활성화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짧은 기간 비약적인 성장을 한 시내버스가 앞으로도 시민의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수단이 되길 기대해 본다.
knat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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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의 태동
6일 한국교통연구원, 서울시 등에 따르면 대구호텔 사장이었던 일본인 베이무라 다마치로가 일본에서 버스 4대를 들여와 1920년 7월1일부터 국내최초의 버스를 운행한 것이 우리나라 버스의 첫 역사라고 한다. 대구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팔달교, 동쪽으로는 동촌까지 운행했으며 정류소가 있었지만 중간에 승객이 손을 들면 정차해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1932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노면 전차를 운행하는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에 매각됐고,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경성전기는 버스이름을 경전버스로 바꾸고 전차노선과 차별화했으며 전차와 버스를 한 장의 승차표로 환승이 가능토록 했다.
위의 기록은 일제 강점기를 포함했을 경우이고 광복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1949년 8월16일 서울승합 등 17개의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아 273대가 운행을 시작한 것이 서울시 최초의 시내버스 운행이다. 서울시는 이 기록을 공식기록으로 간주하고 있다.
80년 전인 1931년에는 오늘날의 시티투어버스인 유람버스가 등장했다. 정원 16명의 좌석버스로 서울 주요 공원과 명승고적을 내려 구경하거나 차에 앉아서 구경할 수 있었으며 소요시간은 총 5시간이었다.
◇시내버스 산업의 발전
1950년대는 미군 폐차, 드럼통, 일본 중고 엔진을 이용해 수공업형태의 버스를 제작하던 시기였다. 쌍용자동차의 모체인 하동환공업사와 구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사가 생겨났다.
1960년대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자동차보험도 도입됐다. 1962년 신진공업사에서 개발한 16인승 버스는 1963년부터 대량생산을 했다. 또 같은 해에는 대형버스를 규격화했는데 중간과 뒷부분 2곳에 문이 있는 형태였다.
1970년대에는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행됐고, 1979년에는 좌석버스제도가 도입됐다.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도입되면서 앞문이 생겨났다.
1980년대는 서울 지하철 1~4호선 개통으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1위를 지하철에 내주게 됐다. 시내버스는 지하철 노선과 경합지역 노선을 줄이면서 외곽노선, 지하철 연계 등 노선이 다양해졌다.
1995년부터는 리어엔진형식의 버스도입이 의무화됐으며 앞문승차·뒷문하차 제도도입, 안내양제도폐지, 출입문 자동 개폐장치 등이 도입됐다. 또 버스 외부는 연하늘색 바탕에 진한 보라색으로 도색됐다.
◇추억의 토큰과 회수권에서 교통카드까지
1970년대 후반 정부는 버스산업 활성화와 버스교통 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 중 하나가 1977년 12월1일 도입한 버스 승차권인 토큰이다. 토큰제도는 승하차 시간의 단축과 현금 취급의 위험성 감소가 주목적이었다.
그런데 시민들이 버스요금 인상에 대비해 토큰을 사재기하는 일이 일어났고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두 가지 색깔의 토큰을 교대로 사용했다. 서울시는 1996년 교통카드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1999년 10월 토큰제를 폐지했고, 1983년 토큰제를 도입한 대구광역시는 불과 몇 년전인 2008년 7월에 폐지했다.
토큰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는 승객이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낼 때 동전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하기 위함이다. 또 회수권도 사용됐는데 어떤 학생들은 10장을 11장으로 잘라서 사용했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8장을 한세트로 대형화되기도 했다. 회수권은 초·중·고·대·일반·경로 등으로 구별됐다.
이후 1996년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서울특별시의 주도로 '버스카드'가 서울시내 모든 버스에 최초로 사용됐다. 이는 특정 교통 시스템에서의 전자토큰 형태로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별도의 '지하철카드'가 필요했다.
실질적으로 서울의 버스카드가 호환성 있는 교통카드가 도입된된 것은 2000년부터다. 이때부터는 서울의 지하철카드로도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본격적인 통합교통카드 시대가 열리게 됐다.
◇굴절버스와 이층버스 등 다양한 시도
1958년 5월부터 8월까지 서울 시내 6개 노선에 굴절버스 3대를 시범 운행한 적이 있었는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로 조기 퇴출당했다. 그러다가 2004년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도입에 맞춰 20대의 굴절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가의 구입·유지비용, 낮은 수송 효율성, 소음, 엔진 출력문제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일부 버스만 운행되는 실정이다.
런던이나 홍콩에만 이층버스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시티투어용 이층버스가 아닌 정규 이층버스가 도입된 적이 있었다. 1991년에 과천~서울시청 구간에 시범 도입을 했으나 육교, 신호등, 표지판, 전선, 가로수 등을 피해서 노선설계를 하다 보니 효율성이 매우 낮았다. 지금은 서울, 부산등에서 시티투어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시행착오 경험은 우리나라 버스 정책을 발전시키고 버스산업을 활성화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짧은 기간 비약적인 성장을 한 시내버스가 앞으로도 시민의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수단이 되길 기대해 본다.
knat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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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캡틴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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