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죄 없다"
"금융이 인류발전 이끌어···주식시장 없으면 TV도 PC도 없어"
상당수는 금융이 인류에게 어떤 유익한 혁신을 가졌다 주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198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보커(Volker)는 "은행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ATM(현금자동지급기)이 유일하다"며 "누군가 금융 혁신이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를 나에게 보여주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손자가 금융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기억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을 뒤흔든 '아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월가 점령) 운동'도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적대감이 극적으로 표출된 현상이었다. 금융이 사회적 불균형을 키우고 있으며 금융업 종사자가 부를 독점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금융이 세계적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는 지금, 로버트 실러(Shiller·66·사진)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은 죄가 없다"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실러 교수가 누구인가? 2000년 미국 증시의 거품 붕괴와 2005년 미국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를 정확히 예측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꼽은 '세계 100대 경제학자'에, 미국 블룸버그로부터는 '세계 50대 금융학자'에 선정된 인물이 아닌가. 그가 2000년 펴낸 책인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전임 FRB 의장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실러 교수가 올해 4월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라는 책을 내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고 존경받는 교수로 평가받는 그가 어떻게 금융을 옹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러 교수는 그러나 "좋은 사회가 되려면 금융 부문의 발전이 필수적이며, 금융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을 견지하고 있다. 사악(邪惡)하고 탐욕에 찌든 일부 금융업 종사자 때문에 금융 자체가 갖는 긍정적 역할이 대중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탐욕의 화신'으로 비판받는 골드만삭스에 대해서도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이 골드만삭스의 최대 관심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변호한다.
실러 교수가 금융의 '변호인'을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Weekly BIZ는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른 실러 교수를 지난 4월 말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연구실로 찾아갔다.
- ▲ 미국에서 존경받는 교수로 평가받는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금융은 죄가 없다’는 논쟁적 화두를 던진 후“많은 사람으로부터‘어떻게 금융을 옹호할 수 있느냐’는 항의성 이메일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 블룸버그
실러 교수는 그러나 "요즘 분노가 가득 담긴 항의성 이메일을 심심찮게 받고 있다"고 했다. 올해 4월 초 펴낸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라는 책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으로 많은 사람이 금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말 Weekly BIZ가 예일대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책상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먹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아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 운동'에 대한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아큐파이 핸드북(Occupy Handbook)'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월가 점령 운동 참가자들이 탐욕스러운 금융가에게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들이 금융자본주의 자체의 붕괴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은 최고의 발명
주식회사 고안한 덕에
위험 분산시킬 수 있어
기업이 자금 쉽게 조달
◇"금융이 인류 발전에 기여… 모든 사람이 금융을 알아야"
―많은 사람은 당신을 비관론자로 알고 있는데, 요즘에는 금융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한다. 상당히 혼란스럽다.
"기본적으로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거품 붕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시장에 끼어 있는 거품에 대해 비관적이지 금융 자체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다. 금융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자원을 모으고 사업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활동이다. 금융은 현대 문명사회의 근본 기둥이다. 인류가 발명한 금융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사람들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금융이 '발명'됐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주식회사가 금융 발명의 대표적 사례다. 주식회사의 시초는 1602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동인도회사다. 그들은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배를 만들고, 그 배로 동쪽을 오가며 무역을 벌였다. 또 증권거래소를 세워 주식 거래를 쉽게 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서 위험을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영리한 방법이었다. 위험 분산은 심리학적으로 매력적이다. 금융은 이런 발명 등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민주화됐다."
―금융업 종사자와 금융 전공 학생은 당신의 새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예일대에서 25년 동안 금융을 가르쳤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금융업 종사자는 탐욕적이거나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금융업 종사자는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사회의 근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금융이 경제적 혁명을 창조했다고 평가한다. 나는 금융의 약점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고치기 힘든 약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의 본성이다. 사람은 공격적 충동도 갖고 있지만, 칭송받고 싶은 본능도 갖고 있다. 공격성을 약화시키면서 최대한 생산적이 되도록 금융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한다."
―금융이 사회를 발전시킨 긍정적 예가 있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금융이 없었다면 TV, PC 등 첨단기기도 나올 수 없었다. 주식시장이 없다면, 당신은 이런 제품을 생산할 인력·자금·자원을 쉽게 조달할 수 없을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구조는 엄청 복잡하다. 다국적기업은 여러 나라에서 직원을 고용해야 하고, 여러 분야에 얽혀 있는 금융 계약을 많이 체결해야 한다. 계약의 역할은 제품 생산과 관련이 있는 이해 당사자에게 협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런 금융 활동이 갖고 있는 긍정적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버핏세 필요한 이유
불균형 있어야 사회발전
다만 지나치면 분노 유발
新조세체계 고민할 시점
◇"불균형 있어야 사회 발전… 경쟁 허용되는 사회가 바람직"
―당신은 금융 자체를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당신이 사악한 금융가를 옹호한다고 느낀다.
"책을 내고 나서 분노의 이메일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 욕설이 담긴 이메일도 받았다. 나는 사악한 금융가를 대신해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세상을 발전시키는 금융 지식을 배울 수 있다. 또 금융업 내부에는 회계사·감사·변호사 등 많은 직업이 있다. 금융 로비스트도 그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금융 로비스트가 부자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법을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특히 사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주요 그룹의 이해 대변자가 있어야 한다. 근로 계층도 자신들의 관점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를 가져야 사회적 균형이 달성될 수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의 탐욕스러운 문화를 비판하는 전직 임원의 글이 화제가 됐다.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그렉 스미스가 골드만삭스를 떠나면서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읽어보면, 그는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는 12년 동안 기업 문화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외부자인 내가 기업 문화가 바뀌었다는 그의 주장을 논평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이 골드만삭스의 관심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엄청난 돈을 벌면, 다른 사람은 이를 좋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다. 제한적 범위에서 경쟁이 허용되고 능력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중국도 최근 금융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국은 급성장해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 경제는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부패다. 상대적으로 적은 변호사가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변호사는 계약을 체결하고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필요하다. 계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 속임수가 난무할 것이다. 중국은 아직 이런 관행이 발전하지 않았다."
―최근 버핏세가 의회에서 부결됐는데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기본적으로 버핏세에 찬성한다. 버핏세의 취지는 고소득층이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불균형을 허용할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관용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소득이 동일하다면,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노력을 해도 남보다 잘살 수 없는데 왜 노력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균형이 지나치게 되면,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지금은 과도한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 조세 체계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월가 점령 운동을 '아랍의 봄'에 비교하기도 했는데.
"아랍의 봄이 월가 점령 운동에 영감을 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랍의 봄에서 목격한 것은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평화적 시위가 오랜 기간 유지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월가 점령 운동도 미국 사회가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으며 부유층이 정치를 독점해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많은 사람이 월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점령 운동 참가자들이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장 예측의 비결
경제지표 관찰 못지않게
심리적 경향 파악해야
진짜 속내 읽는 게 중요
◇"경제 예측 비결 없어… 사람의 속내를 잘 읽는 게 중요"
―세계적으로 침체 상태인 부동산 시장은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는가?
"모든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이 내리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호주·캐나다는 지역에 따라 사정이 약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오름세가 유지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부동산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떨어지더라도 곧 반등할 것이라는 미신이 있었다. 이는 땅의 공급은 제한적이고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착시일 뿐이다. 여전히 이런 미신을 믿는 사람이 많다."
―당신은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붕괴를 연이어 정확히 예측했다. 그런 예측의 비결은 무엇인가?
"특별한 비결은 없다. 두 번은 정확하게 예측했지만, 다음번엔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람들의 심리적 경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없다. 경제 지표를 주의 깊게 보거나 세련된 경제 모델을 만드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속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때 그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물론 어렵다."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나도 미국 경제 회복을 원한다. 그런데 주식 가격은 이미 높다. 2009년 이후 많은 기업의 이익이 상당히 늘었다. 하지만 이익 급증은 원가 절감을 통해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제가 갑자기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다. 높은 실업률이 큰 문제다. 또 유럽 위기가 세계적 불안정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유가도 위협 요인이다."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교수는
▶출생: 1946년 미국 디트로이트
▶학력: 미시간대 학사, MIT대 경제학 박사
▶경력: 펜실베이니아대·미네소타대·예일대 교수, 영국 런던정경대 방문교수
▶수상: 폴 새뮤얼슨상(1996)·도이치뱅크상(2009) 등
▶저서: '금융과 좋은 사회'(2012), '동물적 본능'(2009) 등 7권
▶기타: 미국 주택시장의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지표인 '케이스-실러지수(Case-Shiller Home Price Indices)' 고안
[Weekly Biz] 엄청난 자금 모았지만 우량 투자처 못찾는 VC<벤처캐피털>… 제2의 '닷컴 버블' 우려
입력 : 2012.06.08 13:41
아이디어로 승부 거는 마이크로 스타트업의 경우 1만달러 정도면 회사 꾸려
2% 달하는 운영보수 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자금 끌어들여 투자의 건전성 훼손돼
실리콘밸리는 요즘 호황이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이후 또 한차례 거품이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호황이 계속 갈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 성공 모델의 한 축(軸)인 벤처캐피털(VC)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미국의 유명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프레드 윌슨은 "지금 VC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돈을 끌어모아 투자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VC들이 2%에 달하는 운영보수를 노려 과다한 자금 모집에 집착한다는 지적이다. 운영 보수는 펀드 설정 금액에 비례하기 때문에 펀드 외형규모를 늘리고 싶은 유혹에 계속 시달린다는 것.
문제는 끌어모은 거대 자금을 투자할 만한 우량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기존 플랫폼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마이크로 스타트업들은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족·친지로부터 투자 받은 돈이나 엔젤 투자자로부터 받은 1만달러 미만의 종자돈만으로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회사를 꾸려갈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VC들이 이들 기업에 중도 투자하더도 예전처럼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최근에는 엔젤 투자자에게 돈을 맡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도 나타났다. 인터넷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만든 마크 안드레센이 세운 '안드레센-호로위츠'와 '세콰이어' 등이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하고 있다.
일부 VC는 고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탈(脫)실리콘밸리'에 나선다. 세콰이어·클라이너퍼킨스 등은 베이징·싱가포르 등 아시아 도시에 지사를 내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다른 VC들도 뉴욕·런던 등의 지사를 통해 다양한 투자처를 찾고 있다.
립부 탄 월든 인터내셔널 회장은 "많은 VC들이 아직도 실리콘밸리 인근에서만 투자를 고집하는데, 실리콘밸리 내부에만 갇혀서는 좋은 아이디어와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