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스크랩] 19대 國會로 진출한 `남로당의 후예들`

good해월 2012. 7. 17. 08:11

19대 國會로 진출한 '남로당의 후예들'
2012년 대선을 잘못 치루면 남한의 國體변경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金泌材 

기록은 무섭게 남는다.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 비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최순영 전 의원. 방북 중 <노동신문>을 웃으며 봤던 그녀가 얼마 전 이석기의 비리를 폭로(?)했었다.
 

1. 지하당 사건 핵심세력은 늘 북한과 연계

노동계급의 전위당은 이미 수립되었다. 그러나 전위당만으로 정치권력 장악이라는 노동계급의 승리가 달성될 수는 없다...(중략) 대중의 실제 행동을 조직하고 수많은 노동자 군대를 운용하며 사회의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전투에 모든 계급 역량을 발휘시키는 일에서 순수한 공산주의의 진실을 단순히 반복하는 선전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역량을 수천 명으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 수백만 그리고 수천만을 상정해야 한다.”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현재 대한민국에서 날고 기는 從北인사-단체의 뿌리를 깊이 캐고 들어가면 북한의 노동당과 연계된 남로당을 만나게 된다. 인혁당-통혁당-남민전-남한조선노동당(이선실 사건)-민혁당 등 주요 지하당 사건 기록을 보면 ‘핵심세력’은 늘 북한과 연계되어 있었다.  

都禮鍾(도예종)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1948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1960년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 간사장을 지냈으며, 1964년 7월 북한간첩 김배영, 김규칠 등과 함께 인민혁명당(인혁당)을 조직, 지하활동을 하다가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都禮鍾은 인혁당 사건 이후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다시금 체포되어 이듬해 사형됐다. 그는 인혁당 재건위 외에 徐道源(서도원), 河在浣(하재완) 등과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도 관여했다.

都禮鍾(도예종)이란 이름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에 발생한 최대 공안 사건인 남민전 사건에도 등장한다. 남민전 사건 연루자들은 남한에서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을 모의했다. 이들은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戰線旗(전선기)를 준비했다. 

戰線旗의 상부는 赤色으로 해방된 지역인 북한을, 하부는 청색으로 未(미)해방지역인 남한을 상징하며, 중앙의 붉은 별은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을 의미했다. 

문제의 깃발은 사형당한 都禮鍾 등 소위 ‘8열사’가 입었던 內衣를 염색한 천으로 만들어졌다. 《좌익사건실록》은 남민전이 金日成에게 바치는 서신을 수록하고 있다.

문제의 서신은 “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는 등 金日成에 대한 찬양과 숭배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민전은 1979년 대부분의 조직원이 검거됐지만 이 조직이 운동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우선 남민전 잔당들은 80년대 左翼세력에게 주체사상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서는 ‘反美’라는 反제국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남민전의 투쟁노선 역시 그대로 수용됐다. 남민전에 직접 연루, 검거됐던 이들 역시 80년 左翼세력의 큰 축을 형성했으며,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민주화 인사로 둔갑했다. 대한민국은 머리(신뢰못할 中道 이명박)를 제외(?)하고, 몸통과 팔-다리 모두 極左세력이 장악한 상태다.

2012년 대선을 잘못 치루면 남한의 國體변경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法으로 左翼세력을 제압했어야 하는데, 이미 그 시기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칫 內戰的 상황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민청학련 사건과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한 인물은 지금까지 지난 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금 여당의 중진의원이다. 문제는 이들을 조종하는 진짜 배후 인물은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對南공작의 진짜 배후야 남쪽이 아니라 당연히 북쪽에 있겠지만...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2. 민통당 당선자중 약35%(44명)가 前科者!

4.11총선 결과를 보면 300명의 당선자 가운데 전과자가 총61명(20.3%)으로 18대와 비교해 전과자(25명) 비율(8%)이 2.5배나 증가했다. (민통당 44명, 통진당 8명, 새누리당 7명, 선진당과 무소속 각각 1명)
 
※국보법·집시법 위반자로 본 통진당·민통당·새누리당의 전과자 비율은 다음과 같다.
 
 ▲전과자가 가장 많이 출마한 黨은 민통당이다. 248명(지역구 210명, 비례대표 38명)의 총선 출마자 가운데 68명(27.4%)이 전과자였다. 이중 44명이 당선되어 민통당 당선자(비례대표 포함 총127명)의 34.6%가 전과자로 나타났다. 44명의 당선자 가운데 국보법과 집시법 위반자는 각각 20명이었다. 국보법과 집시법을 모두 위반한 당선자는 11명이었다. 반공법 위반자는 2명으로 한명숙 前 대표와 이학영(前 YMCA 사무총장) 당선자이다.
 
 민통당의 19대 총선 공천기준에서 도덕성 기준은 뇌물, 알선수재, 공금횡령, 정치자금, 파렴치범, 성범죄, 개인비리, 중대한 화이트칼라 범죄 가운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정체성 기준과 관련해서는 잦은 당적변경과 공천-경선불복 등 중대행위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공천신청자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체성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國家觀과 관련된 사항은 통진당과 마찬가지로 없었다.
 
 ▲통진당은 75명(지역구 55명, 비례대표 20명)의 총선 출마자 가운데 40명(53.3%)이 전과자였다. 이들 가운데 8명이 당선되어 통진당 당선자(비례대표 포함 총13명)의 61.5%가 전과자로 나타났다. 전과전력이 있는 통진당 당선자 가운데 국보법 위반자는 4명(김재연, 노회찬, 오병윤, 이석기), 집시법 위반자는 5명(김미희, 김재연, 박원석, 오병윤, 정진후)이며, 국보법과 집시법을 모두 위반한 당선자는 2명(김재연, 오병윤)이었다.
 
 통진당 내부 문건에 따르면 총선 출마자 부적격 후보로 분류되는 기준은 총 6가지였다. ‘당선되더라도 법에 의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者’, ‘경력 등 중요한 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者’, ‘反인도적 범죄·파렴치 범죄·부패범죄, 공직 직무상 범죄, 기타 중대한 범죄의 전력이 있는 者’, ‘선거권이 없는 者’, ‘黨의 강령 및 기본정책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를 한 者’,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者’에게 후보 자격을 인정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민통당과 마찬가지로 통진당의 후보 분류기준에는 가장 중요한 國家觀과 관련된 사항은 없었다.
 
 ▲새누리당은 274명(지역구 230명, 비례대표 44명)의 출마자 중 13명(4.7%)이 전과자였다. 이들 중 7명이 당선됐는데 정병국-하태경 당선자가 국보법 위반 전과가 있었다. 이재오 당선자의 경우 반공법 위반 전력이 있었다. 새누리당 당선자 중 집시법 위반자는 없었다. 

3. 國會로 진출한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 8인
 
전대협 출신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와 함께 민통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인 강창일, 이목희, 이상민, 문병호, 정청래는 2007년 대표적 從北단체인 한국진보연대 등이 주도한 간첩·빨치산 추모제(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인물들이다.
 
당시 행사에 소개된 열사 가운데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추모대상에는 남파 간첩 출신의 금재성·김도한·김남식·신창길·왕영안·윤용기·진태윤·최백근·최남규·최인정, 빨치산 출신의 권양섭·김광길·김병인·김용성·김현순·류낙진·박판수·손윤규·안상운·윤기남·장광명·정대철·정순덕·주명순 등 共産(공산)혁명가들이 포함됐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미화했었다. 진보당 19대 총선 당선자로는 노회찬, 심상정이 당시 행사에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4. 國會로 진출하는 利敵단체 '전대협' 출신 인사들

기사본문 이미지
노무현 정권의 주요 인맥이었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출신 운동권 세력이 대거 국회로 진출했다. 19대 총선 전대협 출신 당선자는 김태년, 이인영, 임수경, 오영식, 우상호, 정청래, 최재성, 박홍근 등이다.

전대협은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하다, 1992년·1993년 핵심부서인 ‘정책위원회’ 등이 利敵團體(이적단체) 판정을 받았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前身)의 전대협 수사결과에 따르면 전대협은 主思派(주사파) 지하조직에 장악되어 있었다.〈主思派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전대협의 조직실체〉등의 공안문건들은 전대협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전대협은 87년과 88년 전국사상투쟁위원회와 反美청년회의 배후조종을 받은 데 이어 89~90년에는 ‘자주·민주·통일그룹’(自民統)의 배후조종을 받아왔고, 91년 이후에는 반제청년동맹, 조통그룹 등 主思派지하조직에 장악됐었다…(중략) 전대협은 항상 김일성과 한민전(북한의 對南선전매체)을 추종하는 지하혁명 조직에 의해 움직여 왔다.》

특히〈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문건의 경우 이인영, 오영식 등 과거 전대협 1기, 2기 의장들이 모두 主思派 지하조직원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87년 5월 전대협 제1기가 결성된 이후 19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主思派 지하혁명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 핵심조직원임이 그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은 1986년 12월 고려대 중심 主體思想 신봉자들이 결성한 主思派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 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킨 자이고,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1988년 1월20일 主思派 지하조직 反美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전남대), 김종식(한양대) 등도 主思派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음》

4. 2012년 다시보는 1948년 '國會프락치사건' 

‘國會프락치사건’은 1948년 5.10總選擧에 의해 國會가 구성된 후 원내(院內)에서 정치노선을 명확히 확립하지 못했던 急進세력들이 남로당원들의 사주를 받아 國會장악을 시도했던 공안 사건이다.
 
당시 제헌국회(制憲國會)의 김약수를 중심으로 한 동성회(同成會)소속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특수공작부 국회담당책 하서복과 남파 여간첩 정재한의 지령을 받아 ‘자유주의에 입각한 進步的 민주정치 실현’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國會장악을 시도했다.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政府수립 직후부터 ‘외국군대(美軍)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던 북한 정권의 주장과 보조를 맞추었다.
 
美軍 철수 외에 이들이 제시한 ‘7원칙’에는 남북한 정치범석방, 반민족자 처단, 조국방위군의 재편성, 보통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관의 구성, 남북 정당단체 대표에 의한 정치회의구성, 憲法改正 등을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실제로 1948년 10월 13일 노일환, 김약수 등 총 47명의 국회의원들은 外軍철수 긴급동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의 선전선동과 당시 소련의 ‘美蘇 양군의 한반도 동시 철수’ 요구를 받아들인 美國은 1949년 6월 美軍은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를 감행했다.
 
進步를 가장한 이들의 공작은 공안경찰의 수사를 통해 여간첩 정재한의 음부(陰部)에서 비밀 암호 문건이 발견된 후 사건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제2회 國會가 폐회된 직후인 1949년 5월 18일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등 세 명의 의원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3차에 걸쳐 김약수 부의장을 비롯한 13명의 의원이 구속됐다.
 
1950년 2월 1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광욱 판사주심, 박용원-정인상 판사 배심, 오제도-선우종원 검사는 이들에게 최고 징역 12년 형에서 2년 형까지 선고했다.
 
國會프락치사건은 관련 피고인들이 1심 판결에 불복항고, 2심에 계류 중 6.25를 맞았다. 사건 관련자들은 동란의 와중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김옥주는 반납치되다시피 越北한 것으로 알려졌고 김병회도 6.25때 拉北되어 생사 불명상태다. 노일환, 이문원 배중혁, 최태규, 황윤호, 신성균, 김약수, 강욱중, 박윤원, 이구수 등은 9.28수복 전 모두 越北하여 재북평화통일협의회 간부 등을 지내다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로당은 이 사건이 공안당국에 의해 발각되자 담당검사와 수사관 암살을 여러 차례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남로당 특수행동대원 이용운에 의해 1949년 8월 12일 김호익(金昊翊)총경이 피살됐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태어난 아기를 군홧발로…”탈북자 수감교화소 참상 ‘끔찍’

 

북괴도발,천안함 폭침 2주년 46용사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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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글쓴이 : 오늘도기쁘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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