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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기의 중산층]설문조사 | 한·중·일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韓·中은 ‘돈’ 日은 ‘상식과 시사지식’ 중시

good해월 2013. 1. 1. 07:58

[위기의 중산층]설문조사 | 한·중·일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韓·中은 ‘돈’ 日은 ‘상식과 시사지식’ 중시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2.12.31 09:53

 

한국인의 '중산층 붕괴 현상'에 대한 우려와 스스로 '나는 중산층이 아니다'라며 느끼는 박탈감은 이웃 일본, 중국보다 훨씬 높았다. 본인이 중산층에 속하는지 묻는 질문에 한국인 10명 중 8명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15.8%에 불과했다. 일본 28.8%, 중국 48.4%에 비해 현저히 낮다. 매경이코노미가 리서치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실시한 한·중·일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왜 한국인은 자신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한국인이 중산층을 규정하는 기준이 오로지 경제적인 잣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 금융자산을 갖지 못하거나 월 소득이 높지 않을 경우 아무리 많이 배우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더라도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일, 상류층 진입 확률 10% 미만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도 중산층의 기본 요건으로 소득 또는 재산을 꼽았다. 중국은 102㎡(30평) 이상 주택을 보유한 경우, 일본은 월평균 소득이 40만엔(약 512만원) 이상인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중산층의 두 번째 자격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집, 중국은 소득을 꼽았지만, 일본은 일정 수준의 상식과 시사 지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경제적인 부분만큼 의식적인 면을 강조한 데서 일본인 의식이 한국인, 중국인보다 다소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비율(28.8%)은 높지 않다. 중산층의 두 번째 요건으로 삼을 정도로 중시하는 일정 수준의 상식과 시사 지식을 함양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본인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꼽으라는 질문에 이처럼 응답을 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한국과 동일하게 경제적인 부분에서 자신들이 정한 기준치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신의 국가에 중산층이 얼마나 되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한·중·일 모두 21~30%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한·중·일 3국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월평균 소득(4인 가족 기준)이 얼마나 돼야 할까. 한국은 500만원 이상~7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이 44.8%로 가장 많았다. 반면 중국은 1만5000위안~2만위안 미만(260만~345만원)이 22.2%로 가장 많다.(설문대상 지역인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기준) 일본은 50만엔 이상~60만엔 미만(640만~764만원)이라고 답한 비율이 16.8%로 가장 많았으나, 월평균 소득과 상관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6.2%에 달했다. 금전적인 부분이 충족된다고 해서 중산층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한국과 중국에서 월평균 소득과 상관없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3.4%, 1.4%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은 돈만 있으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나라다.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것은 가능할까.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 모두 '10% 미만'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한국인은 양극화 심화(24.8%), 자수성가가 어려운 사회·경제적 분위기(21.7%), 상위계층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 부재(20.2%)를 이유로 꼽았다. 오랜 저성장 시대를 겪고 있는 일본인은 1순위로 '저성장 시대 자산 증식 기회가 거의 없다(24.5%)'는 이유를 선택했다. 반면 중국은 아직 성장곡선이 가파른 만큼 중국인은 한국인, 일본인에 비해 상류층으로의 진입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중국인 중 '중산층이 상류층에 진입할 확률이 10%대'라고 답한 비율은 24.8%로 가장 많았다.

거꾸로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추락하는 건 3국 모두 어렵지 않아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 중산층 붕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심각하다고 답한 사람은 51.8%.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사람도 18.4%에 이른다. 일본도 심각하다(45.2%)는 답변이 보통(34.8%)보다 많았다. 반면 중국은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67.6%)이 심각하다고 답한 사람(14.6%)보다 많았다. 중국은 붕괴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13.4%에 달한다.

한국 '분배 강화' 일본 '일자리 창출'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뭘까. 3국 국민 모두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 다만 비율은 크게 차이 난다. 경제성장에 목마른 일본인은 61%가 1순위로 경제성장을 얘기했다. 중국인은 35%, 한국인은 24.4%로 한국인이 가장 낮다.

한국인은 경제성장에 이어 분배정책 강화(16%)를 거론했다. 일본인은 일자리 창출(14%)을 2위로 택했다. 분배정책 강화를 꼽은 비율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은 2위로 사회 이동성이 활발해지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13.6%)고 했다. 분배정책 강화(8.2%)는 사회안전망 구축(13.2%)과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의료 제도 확립(12.6%)에 이어 5위다. 한국인이 유독 분배정책 강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즐기는 취미생활도, 잘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유창하기는커녕 더듬더듬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외국어 실력도 없는 A씨는 자신의 자녀는 각각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외국어 하나쯤은 잘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소득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지출한다. 자녀 세대 때는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중산층으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서다. 결과적으로 A씨의 이런 소망은 A씨의 자녀가 중산층이 되는 것과 별 상관이 없음이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녀 세대 때 중산층 요건으로 중요하리라 예상되는 요건을 묻는 질문에 한국인은 여전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매달렸다. 500만원 이상 월평균 소득(29%),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자산(20%), 30평형 이상 주택 보유(16.2%) 등이 언급됐다. 중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국인이 꾸준한 사회봉사와 기부(11%)를 2위로, 일본인이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14.2%)과 일정 수준의 상식과 시사 지식(14.2%)을 공동 3위로 꼽은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아직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남아 있는 중국과 오랜 선진국민으로서의 경험을 거치며 지식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오로지 '돈'만이 중요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설문조사 어떻게 했나

매경이코노미와 리서치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은 12월 10일부터 17일까지 한·중·일 중산층 조건 비교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대상자는 한·중·일 3국 각각 500명. 설문 데이터 수집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온라인 설문 방식을 통해 진행됐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8호(12.12.26~12.31 일자) 기사입니다]

 

 

 

[위기의 중산층] 좌담회 | 한국 거주 외국인이 본 ‘한국의 중산층’…아이 낳는 순간 삶의 질 ‘뚝’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2.12.31 09:53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40만명을 넘는다. 나름대로 한국에 거주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모국보다 행복한 생활을 원하는 건 공통분모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국에서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 모국에서 중산층으로 살았다면 한국에서도 그 이상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을까. 한국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좌담회를 열었다. 메튜 하빌 한미글로벌 이사(미국·44), 박매화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중국·31), 스즈키 시호 주부(일본·33)가 패널로 참여했다. 국가와 성별, 직업이 다양한 3인은 모두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Q.

한국에 살아보니 한국 중산층과 모국 중산층이 다른 점이 있나.

메튜 하빌

: 한국은 계층별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이 사는 지역도 다르고 소비하는 장소도 다르다. 예를 들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상류층이다. 끼리끼리 살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중산층이 이들을 무작정 부러워하는 것 같다. 미국에도 부유층이 몰려 사는 지역은 있지만, 한국처럼 심하게 비교하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무엇을 가졌는지 중시한다면, 한국인들은 무엇을 못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박매화

: 한국 중산층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피곤하게 살고 매일 쫓기는 느낌이다. 소득이 중국보다 낮은 것도 아닌데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메튜 이사 말처럼 남과 비교하는 태도가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중요한 원인이다.

스즈키 시호

: 동감한다. 한국 중산층은 너무 일만 열심히 한다. 우리 남편도 한국인이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다. 일본 중산층도 일은 많이 하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즐기는 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많다.

Q.

최근 한국에서는 각국 '중산층의 조건'이란 내용이 화제가 됐다. 미국, 일본, 중국의 중산층 기준이 어떤지 궁금하다.

메튜 하빌

: 미국 중산층은 상위중산계층(upper middle class)과 하위중산계층(lower middle class)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상위중산계층은 의사, 변호사, 중소기업 임원 등 좋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크게 부유하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하위중산계층은 기능공 등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돈을 많이 버는 숙련노동계층이다.

스즈키 시호

: 일본에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주로 고민하면 아무리 다른 요소를 고루 갖춰도 중산층 자격이 없다. 잘 곳이 없거나 밥 굶는 일이 없고, 여유가 생기면 종종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중산층이다.

박매화

: 중국은 일본처럼 문화생활을 중시하진 않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산이 가장 중요한 중산층의 기준이다. 중국어로 중산층의 '산(産)' 자는 재산을 의미한다.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Q.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계층 이동에 성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나.

메튜 하빌

: 미국에선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다. 부자와 결혼하거나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계층 이동이 쉽지 않다(웃음). 그래도 한국보다는 미국이 더 쉽다. 미국은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반면 한국은 직장에서 퇴직하면 생계형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 성공률이 매우 낮다.

박매화

: 중국에서는 한국만큼 계층 상승이 어렵진 않다. 실업자가 되더라도 눈을 조금만 낮추면 일자리는 손쉽게 구한다. 중국 임금상승률은 연평균 10% 이상이고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 승진도 빠르다. 중국 대기업에서는 빠르면 30대 중후반 임원이 돼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늦게 일을 시작한 중국 친구들 연봉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스즈키 시호

: 일본은 중국보다 역동성이 부족하다.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중산층이라고 보는데 일본 중산층은 한국과 달리 일확천금 꿈을 꾸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본인들은 갑자기 창업을 하거나 도박성으로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다. 직장인은 계속 직장에 다니길 원하고, 자영업을 하면 몇 대째 같은 사업을 한다.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 만큼 계층 이동 역시 적다.

Q.

반대로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어떤가.

박매화

: 한국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은 주로 하우스푸어(house poor)다. 나 역시 통계학적으로 보나 소득으로 보나 중산층이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서 불만이다. 집을 사기는 엄두가 안 나고 전셋집은 2년마다 몇천만원씩 오르니 아무리 저축을 많이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기 때문에 하우스푸어가 많지 않다.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한국보다 적은 편이다.

스즈키 시호

: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적은 것처럼,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한국처럼 집값이 오르지는 않지만, 투자 목적보다는 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기 때문에 하우스푸어가 많지 않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자칫 잘못하면 하류층으로 떨어진다. 너무 쉽게 점포를 창업하고 너무 쉽게 망한다. 시어머니도 광주시에 죽집을 열었는데 장사가 안돼 2년 만에 그만뒀다. 서울 대표 상권에서조차 옷 가게나 음식점이 두어 달 만에 간판을 바꿔 다는 걸 보면 일본과 차이를 크게 느낀다. 일본에선 준비 없이 무리하게 점포를 여는 사례는 보기 힘들다.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메튜 하빌

: 한국, 미국 모두 오랫동안 큰 병을 앓거나 한순간에 직장을 잃으면 중산층이 종종 하류층으로 전락한다. 다만 차이점은 한국 실업자는 취업 시장에 재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임시직이 많지만, 재취업이 한국만큼 어렵지는 않다.

Q.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고 난리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박매화

: 한국에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삶의 질이 나빠진다. 한국 중산층이 어느 정도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면 맞벌이가 필수인데, 한국은 맞벌이가 너무 어려운 사회다. 보육 시설이 부족하고 육아휴직 사용하기도 어려워 여성이 직장생활 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눈치 보지 않고 자리를 비울 수 있다. 근무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아 얼마든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한다.

스즈키 시호

: 전적으로 동감한다.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면 소득이 반으로 줄어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정부 지원이 부족한 것도 중산층이 줄어드는 이유다. 예를 들어 한국은 출산지원금이 기껏해야 50만원인데 일본은 500만원가량 된다. 아동지원금이나 학비 지원 역시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Q.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을 것 같다.

메튜 하빌

: 주택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도 주택 시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중산층이 급감했다. 한국도 미국만큼 주택 정책이 중산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을 탄탄하게 만들려면 안정적인 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가계부채도 줄여야 한다. 이 역시 주택 정책과 관련이 있다. 가계부채 상당 부분이 모기지론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국도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가계부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중산층 문제 해결은 어렵다.

스즈키 시호

: 중산층이 어느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생활물가를 잡아야 한다. 한국의 생활물가는 일본보다도 높다. 일단 소득 대비 집값이 높아 중산층이 살기 어렵다. 육아에 필요한 비용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줄였으면 한다. 백화점에서 아이 옷 한 벌 사려면 최소 5만~10만원은 든다. 일본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일본 친정집에 가면 아기용품 사오는 게 일이다. 육아뿐 아니라 교육비도 많이 드는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중산층을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사회 : 김경민 기자 ·정리 : 문희철 기자 / 사진 : 박정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8호(12.12.26~12.31 일자) 기사입니다]

 

 

 

[위기의 중산층]위기의 중산층…‘나는 중산층’ 16%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2.12.31 09:57

 

우리나라 경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무너진다. 상류층 진입의 꿈은커녕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이 갈수록 늘어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중산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 회원국 중 18위로 최하위권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중산층 비율을 70%로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다.
진정한 중산층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중산층 조건은 상대적이고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중산층 별곡'이란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30평대 아파트, 2000cc 자동차를 보유하며 예금잔액이 1억원 이상이고 매년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떠나야 중산층이다. 이에 비해 미국 중산층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약자를 도와야 한다. 프랑스에선 외국어 하나 구사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중산층 대접을 받는다. 물질적인 가치만 추구하는 우리의 중산층 기준은 이대로 괜찮을까.


중산층이 무너진다

생계형 자영업 내몰리고 노후 준비 막막

지난해 H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김 모 씨(53)는 '사장님' 얘기 들을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퇴직 아픔도 있었지만 대박점포만 열면 내심 인생역전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말 2억원 남짓한 퇴직금과 예금 5000만원에 대출 2억원까지 받아 경기도 일산에 40평짜리 삼겹살 가게를 차렸다. 아내뿐 아니라 대학 다니는 두 자녀까지 창업을 말렸지만 과감히 모험을 감행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그럭저럭 장사가 잘됐다. 지인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월 매출도 500만원 이상 꾸준히 나왔다.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변에 고깃집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고 매출도 반 토막 났다. 직원들 인건비 주기조차 버거웠다. 파리 날리는 점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올 10월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문을 닫았다.

퇴직금과 저축을 모두 날린 그는 한순간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현재 거주하는 일산 30평짜리 아파트가 재산의 전부인데 매달 대출이자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폐업 이후 아내와 부부싸움이 잦아진 김 씨는 급기야 이혼 위기에까지 놓였다. 그는 "맞벌이 안 하고 매달 200만~300만원씩 자녀 교육비를 대야 하는 만큼 창업 외엔 대안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최악의 선택이었다"며 "나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불평 없이 살았지만 노후 준비도 못 한 상황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해 허탈한 심경"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중산층(잠깐용어 참조)의 꿈이 사라지고 있다.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은커녕 오히려 하층민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빈곤층 인구는 1990년 218만명에서 2010년 432만명으로 급증했다. 20년 사이 2배나 늘어났다. 반면 중산층 인구는 불과 23만명 늘어나며 정체 상태다. 비중도 쪼그라들었다. 1990년만 해도 네 집 중 세 집은 중산층이었지만 지난해 64%로 급감했다. 소득과 별개로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줄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전엔 누구나 중산층에 속하려는 인식이 강했다. 저소득층도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환위기와 몇 차례 금융위기를 겪은 후 이런 인식이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던 가장들은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직장 정년이 보장되지 못하고 저축 여력마저 줄면서 중산층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한때 20%를 넘나들던 가계저축률은 현재 5%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부채는 5000만원을 넘어서면서 가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지난해 중산층 비중 64%로 감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높은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게 결정타가 됐다. 1991년 제조업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 중 28%인 498만명이었지만 지난해 406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곧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다. 그나마 사업이 잘되면 괜찮지만 자영업자 수가 급증하다 보니 장사가 안되고 소득은 줄어들었다. 노후 대비는커녕 있는 돈까지 까먹는 수준이라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베이비부머 은퇴가 시작되면서 퇴직자들이 생계형 자영업자로 대거 내몰릴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0~40대 젊은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50대 이상 자영업자는 급증해 지난해 말 이미 300만명을 넘어섰다. 자영업 질도 좋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하위 20% 저소득 계층 가운데 도소매업, 이미용업 등 생계형 자영업자가 169만명에 달한다.

가계부채도 문제다. 지난해 가계신용 잔액은 912조원으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40%를 넘는다. 기존 중산층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며 재산을 증식했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제 이런 공식이 깨졌다. 빚을 내 구입한 아파트 가격이 추락하면서 팔지도 못하고 대출이자 갚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치솟는 교육비도 주요인이다. 자녀 한 명을 대학에 보내려면 최소 2억원 이상 든다는 얘기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쓰지만 교육비 부담을 생각하면 아이 낳기조차 겁나는 세상이다.

퇴직 후 창업 실패로 빈곤층 전락

기존 중산층이 무너지면 신규로 진입하는 중산층이라도 늘어야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다. 20~30대 젊은 층은 취업 출발선에서 뒤처지면서 아예 중산층 문턱에도 못 간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고 결혼, 출산은 엄두를 못 내는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했다. 이들에게 연말 추위는 더 매섭다.

이웃 일본, 중국과 비교해도 사정은 심각하다. 매경이코노미가 실시한 한·중·일 중산층 조건 설문조사에서 중국인은 절반가량, 일본은 3명 중 1명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겼지만 우리나라는 16%에 그쳤다. 한국 응답자 중 70% 이상이 '중산층 붕괴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현지에서 본 중산층

| 미국

정치 관심 높아 사회 참여 활발

미국 중산층은 미국을 이끄는 리더그룹은 아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를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 세력이란 자부심이 강하다.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돼 있어 정치, 안보, 자원봉사 등 사회 이슈에 민감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 세금, 유가, 부동산 가격 동향에 민감한 편이다. 경기 침체 땐 가장 먼저 아우성을 치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즉각 지갑을 연다.

미국 중산층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선거철마다 중산층 거주 지역에는 지지 정당과 후보를 나타내는 푯말들이 즐비하다.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정치자금 상당 부분이 중산층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지난 11월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금한 정치자금은 7억4500만달러(약 8000억원)로 이 중 45%가 200달러(22만원) 미만 소액기부였다. 기부자 숫자로도 중산층이 압도적이다. 중산층의 사회 참여는 학교와 사회시설에 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소득 순위별로 40~60%에 해당하는 중산층이다.

미국 중산층의 또 다른 특징은 세련된 균형 감각이다. 중산층을 인종별로 나누면 백인 비율이 아무래도 높다. 중산층 10명 중 7명(69%)이 백인이다. 그러나 인종 차별적인 언사는 미국 중산층이 가장 금기시하는 부분이다. 종교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내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다만 '중산층 축소' 현상은 한국과 비슷하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8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1년 61%에서 지난해 51%로 감소했다. 이에 비해 상류층은 14%에서 20%로, 하류층은 25%에서 29%로 늘어나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최근 중산층이란 단어가 정치무대에서 큰 파워를 발휘하는 배경이다. 지난 11월 6일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도 중산층을 늘리겠다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워싱턴 = 이진우 매일경제 특파원현지에서 본 중산층| 영국소득보다 직업·학력 중시영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 필수요건은 직업(49%)과 학력(47%)이다. 집안(40%), 소득(27%)은 다음 문제다. 영국 여론조사업체인 유거브가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한국은 경제적인 소득이 중산층의 핵심요건이지만, 영국은 직업과 학력을 더 중시한다는 얘기다.

학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한국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아 학위만 취득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학 진학률은 45%로 한국(80%)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대학 진학률은 영국 평균보다 낮은 32.3%에 불과하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경우 전체 학생 중 89%가 부유층과 중산층이다.

영국 중산층은 대부분 진보 성향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0월 "영국 중산층은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보다 이념적으로 좌측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자 정책이나 무직자 생활 보조금 등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해 좌파적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의 긴축 정책과 유로존 위기로 중산층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010년부터 공공지출 삭감 정책을 추진한 영국 정부는 최근 대표적인 중산층 정책이던 육아수당 혜택마저 축소했다.

지난해부터는 '짓눌린 중산층(The squeezed middle)'이라는 조어가 영국 사회에서 종종 통용된다. 짓눌린 중산층은 공공지출 삭감과 물가 상승, 실업난의 영향을 받는 중산층을 일컫는 말이다.

런던 = 이승환 자유기고가

잠깐용어

*중산층

명확한 개념은 없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소득) 대비 50~150%에 해당되는 가구를 보통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은 지난해 월 350만원으로, 월 소득 175만원에서 525만원인 가구가 중산층이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은 빈곤층, 150% 이상은 상류층이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문희철·김헌주·노승욱·임혜린 기자 / 사진 : 박정희·류준희 기자 / 일러스트 : 홍연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8호(12.12.26~12.31 일자) 기사입니다]

 

출처 : 학성산의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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