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스크랩] 북핵 딜레마에 빠진 한국

good해월 2013. 2. 19. 17:50

“北의 20년 비핵화 대화는 전부 거짓”

 

美 협상팀들 몸서리… 3D업종 취급

 

 

1993년 시작된 미국의 대(對)북한 비핵화 대화 20년사에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현 덴버대 조지프코블국제대 학장)만큼 극적인 비상과 추락을 경험한 이도 드물다.

 그는 2005년 7월부터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아 그해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 10·3합의 등 역사적인 성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북한이 2008년 마지막 ‘검증 단계’에서 합의를 파기하면서 그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 창구에서 내려와 이라크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9년 4월 북한이 태평양 상공으로 장거리미사일을 쏘고 5월 2차 핵실험을 하자 미국 정가에서는 ‘도대체 힐이 그동안 한 일이 뭐냐’는 회의론이 나왔다. 힐은 워싱턴과 서울 외교가에서 ‘김정힐(김정일+힐)’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힐의 실패’와 북한의 잇단 무력 도발은 심한 부작용을 낳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말을 두 번 살 수 없다’며 취임 전 선언한 ‘강경하고 직접적인 외교’ 대신 동맹국인 한국을 앞세우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으로 돌아섰다.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한 담당은 ‘잘해야 본전’인 3D 업종으로 취급받는다. 어쩌다 북한을 담당하게 된 국무부 관리들은 사석에서 “내가 자리를 지키는 1, 2년 동안 북한이 큰 사고를 치지 않기만 바란다”며 몸을 사린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 오바마 행정부 내에 제대로 된 북한 전문가가 없다고 지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 당국자들에게 북한은 말이 안 통하는 협상 대상으로 악명이 높다. 2차 북핵 위기 발발 당시인 2002∼2004년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한국학 부소장은 13일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기본적인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에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모든 비핵화 대화는 거짓이었던 것이다.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스타일도 까다롭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협상 스타일은 보통의 주고받기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는 유형”이라고 묘사했다. 북한 외무성이 비망록 등으로 미국에 제시하는 요구사항 리스트는 무조건적인 관계개선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 등 비현실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다만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젊은 지도자(김정은)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에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향후 미국과 한국 정부가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설 때 △한미 간의 사전 협의로 한목소리를 내고 △솔직하게 입장을 설명하며 △북한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세 가지 교훈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2회, 장관급회담 21회… ‘核카드’ 꺼내지도 못했다

 

“북핵 문제 해결은 남북 간 직접 대화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그 대화 과정에서 한국과 긴밀히 협조할 것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1차 북핵위기가 터진 1993년5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한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부부장관은 이렇게말했다. 북핵 문제의 핵심당사국이 남한과 북한임을 분명히한것이다.

그 후 20년간 한국은 북한과 수많은 대화와 협상을 했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3차 핵실험이 강행된 지금이나 북한 핵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과연 북핵 해결의 ‘당사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애초부터 핵문제를 북-미 간 협상 주제로 규정했다. 한국을 대미 협상을 진척시키는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북한이 그토록 외쳐온 ‘우리 민족끼리’ 구호는 북핵 대화와 협상에서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북, 남북 대화에서는 ‘핵문제’ 제외

2000년 이후 남북 간에는 정상회담 2회, 3번의 대통령 특사 방북, 21차례의 장관급회담이 있었다. 그러나 핵문제는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막바지인 2003년 1월 임동원 대통령 특사에게 핵문제 해결 임무를 맡겨 평양에 보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남북 간 회담 여건이 조성될 때마다 핵문제를 제기했지만 진지한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한이 일방적으로 핵문제를 거론하다가 끝나버리곤 했다”고 토로했다.

2000년 7월∼2007년 5월 21차례나 진행된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한국 대표가 ‘핵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 관계가 진전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 북한 대표는 늘 딴청을 피웠다. 남한은 북핵 문제의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기대한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란 선순환 구도는 굴러갈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 구도를 그리려 했다. 그래서 핵문제를 남북 대화의 공식 의제로 삼았다. 2009년 9월 당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남북은 남북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해야 하고 거기에는 핵문제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구상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대화는 혼자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너무 잘 아는 북한이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자회담에서도 한국 소외 현상

북핵 문제에서의 한국 소외 현상은 6자회담 같은 다자대화에서도 반복됐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도 한국을 미국을 움직이기 위한 지렛대로만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한국 수석대표에게 “이라크가 붕괴된 것은 핵이 없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핵 폐기를 하려면 조선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돼야 한다. 남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바뀌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구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정부 내에서는 “북-미 대화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미 대화의 성과를 6자회담의 틀 안에 잘 녹이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미국과의 합의나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미국 재무부의 대북 금융제재를 이유로, 2007년 ‘10·3 합의’는 이행검증서 채택 문제로 반발하며 약속을 파기했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3차 핵실험까지 한 상황에서 협상을 통한 북핵 외교는 실패한 것 같다는 회의감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엄상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쟁을 하면서도 대화는 이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북한의 이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의미 있는 대화 국면이 재개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북한과 어떻게 대화할까

서울 외교가에서는 ‘북한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협상가’라는 역설적 표현이 회자돼 왔다. 그만큼 대화하고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뜻이다. 합의 내용을 잘게 쪼개는 ‘살라미 전술’, 도발 행위를 저지른 뒤 더 큰 도발로 위협해 시선을 분산시키는 ‘골대 바꾸기 전술’ 등은 북한의 대표적인 협상술이다.

북한은 협상장에 나와 앉는 것조차도 하나의 협상카드로 써왔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009년 7월 “미국과 그 동맹국이 조선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아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참가국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회담장 이탈과 복귀를 협상카드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05년 2월에도 북한 외무성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면서 “6자회담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가 5개월 만에 슬그머니 회담장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비공개 접촉 사실을 폭로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전술도 쓴다. 2011년 6월 북한 국방위원회는 남측 접촉 인사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남한이 정상회담을 애걸하며 돈봉투까지 건넸다”는 일방적인 허위 주장을 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항상 도발 뒤 유화 국면을 전개하는 ‘치고 빠지기 전술’을 보여 왔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북한을 상대하려면 로드맵과 정책의 우선순위 등 협상전략을 확실히 짜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남북 간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개선을 반드시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차례 제재에도 한술 더 뜬 北… 中이 뒷짐지는 한 속수무책

“북한 제재의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한국 미국 일본)

“가난하고 폐쇄된 북한에 제재를 더 한들 무슨 효과가….”(중국)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이 매우 아파할 ‘제재 회초리’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식 금융제재와 북한 해외자산 동결, 북한 왕래 선박의 타국 입항 제한 등 해상 봉쇄가 거론되지만 회의론이 적잖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동의 없이는 어느 것도 불가능하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의 독자적 수단도 거의 다 써버렸다. 결국 식량과 에너지라는 북한의 생명줄을 쥔 중국만 바라보는 ‘제재의 딜레마’에 다시 빠졌다.

 북한, 제재 집합소이긴 한데…

국제사회는 그동안 제재 내용을 담은 대북 결의를 3차례 채택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제재위원회가 운용 중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엔 ‘북한 정권이 감당하지 못할 강한 제재’를 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양자 제재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5·24조치, 미국의 대통령 행정명령 13382호 등을 통한 별도의 제재도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대북 제재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15일 “남한이 제재하면 무자비한 보복을 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을 두고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위기의식을 느껴 저 난리를 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이런 대북 제재의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게 쉽지는 않다. 2005년 BDA 제재가 북한의 급소를 찌른 것으로 평가받지만 북한의 핵 야욕을 꺾지는 못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무역규모는 증가 추세이고 2011년 경제성장률도 오히려 0.8% 증가했다. 수치상으로는 제재 효과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제재, 상반된 효과

흥미롭게도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는 효과가 뚜렷하다. 2011년 말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융단폭격 제재로 이란의 통화가치는 80% 급락했다. 경제가 붕괴될 수준이다. 성과는 크지 않지만 이란이 먼저 대화에 나설 노력을 하는 것은 제재의 약효를 보여 준다. 이란은 원유 수출로 지탱되는 개방형 경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제재에 반발해 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대응해 왔다. 폐쇄 경제체제에 수십 년의 제재 학습효과로 내성이 강해졌다. 아사자가 발생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철권통치로 내부를 통제하고 있다. 제재에 견디지 못한 주민의 불만으로 내홍을 겪는 이란과는 크게 다르다.

외부 환경에도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 압박에 미국은 이란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중국이 북한을 강력히 후원하고 있다. 연간 중국의 대북 무상원조 규모는 △석유 50만 t △식량 10만 t △2000만 달러 상당의 현물이다.

 중국, ‘제재 구멍론’에 반박하지만…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중국 대북 정책의 실패라는 서방의 시각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타오원자오(陶文釗) 연구원은 “많은 국가가 중국을 ‘큰 구멍’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는 북한과의 모든 경제교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북 무역은 정상적인 관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한다는 중국의 주장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태양절)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바퀴 16개의 신형 장거리미사일 이동식 발사차량(TEL)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차량이 중국산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안보리 제재 결의 1718, 1874호는 재래식 무기나 무기 부품으로 전용 가능한 물품의 북한 수출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은 별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고 중국 정부가 “개별 기업이 벌목수송용 트럭을 수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소문만 나돈다. 중국의 향후 협조를 희망하며 이를 눈감아 줬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지난해 중반 북한이 탄도미사일 관련 부품으로 보이는 흑연 실린더를 중국 화물선으로 시리아에 반출하려다 적발됐지만 그 뒤로도 징계 얘기는 없다. 

중국 내부에서 곪고 있는 북한 제재 딜레마

국제사회의 불만과 압박도 크지만 중국 내부의 반(反)북한 여론에 중국 당국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주선양(瀋陽) 북한영사관 앞에서 중국인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인터넷에는 북한을 비난하는 ‘북한 장송곡’이 유행한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운영하는 중국망에서 한 평론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중국에 겨냥될 수도 있다”며 “미국의 외과수술적 무력 사용을 묵인하는 것도 고려하자”라는 초강경 주장을 내놨다. 섣불리 북한을 보호하려다가 중국 정부가 비난을 뒤집어쓸 판이다.

대북 제재의 딜레마를 겪는 중국을 끌어들이고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인센티브를 가미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최근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북한이 일정 기간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으면 제재를 자동적으로 거둬들이는 ‘한시적 제재’ 기법을 도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료 : 동아일보>

출처 : 두 리 번
글쓴이 : haj406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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