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보은행복

[스크랩] ◆뭉클한 순간

good해월 2015. 3. 27. 08:42

 

뭉클한 순간

 

 

감정이 북받치어

가슴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고요한 때 찌르르찌르르 우는

여치의 소리를 들을 때도 그렇고,

추석을 앞두고

차오르는 달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기대 없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근중하게 실린 선물을 받을 때도 그렇다.

감나무 아래에서

혼자 쪼그려 울고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들썩이는 내 어깨에 올려놓던

누나의 작은 손으로부터도

나는 뭉클한 것을 느꼈었다.

살고 아파하고 이동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뭉클한 순간을 더러 만난다.

그저께

내게 뭉클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손으로부터였다.

내 아버지는 올해로 연세가 일흔 둘.

평생을 농사 짓는 일을 해온 분이다.

 

한 마을에서 사셨고,

당신의 낮과 밤은

논과 밭과 산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평생을 한 곳에서만

살아온 분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젊었을 적엔

나뭇동을 팔러 지게에 지고

김천 장터까지

이십 리를 걸어 다녔던 분.

셀 수 없을 정도로

상여를 메고 묘혈을 팠던 분.

아주 여럿의 송아지를 받아냈던 분.

근년에

아버지는 시력을 많이 잃고 말았다.

당신에게 이제 세상은

흐릿하고 좁아진 시야 속에 있을 뿐이다.

 

그저께도

병원엘 다녀가시느라

시골에서 서울로 오셨는데

여름 포도 농사를 짓느라

얼굴이 옻처럼 검게 탔고

흰 머리카락은 부쩍 늘었다.

 

낯선 공간에서는

어머니가 늘 손을 잡고 다니는데

그날은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병원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었다.

 

주춤주춤하는 아버지를 손으로

슬쩍슬쩍 끌어당기면서 다니는데

순간

뭉클한 것이 가슴에 꽉 차올랐다.

 

 

 

아버지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닥칠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삽질과 곡괭이질과 낫질이 일품이었던,

일꾼 중에서도 한몫 단단히 하는

상일꾼이었던 분이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건장했고,

계속 건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것은 허물어지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몸이었다.

끝도 모르고 흘러가고

흘러가는 삶의 시간을 나는 보았다.

어떤 부름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나는 “밥 먹자”

부르는 소리에 더러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 부름을 잃고 싶지 않다.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며 부르는

그런

원뢰(遠雷) 같은 목소리 말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산문을 보면,

미당도

마음속에서의 뭉클한 공명에 대해 적고 있다.

미당은

“니야까(리어카) 뒤에다 붙어가는

국민학교도 못 가는 아이의

찢어진 고무신 사이 흙탕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는 때”에

딱한 마음에서 뭉클함이 있었다고 썼고,

 

“극도로 가난한

사십 총각인 어떤 내 시의 후배가

꼭 한 개의 사과를 반질반질하게

그의 손바닥으로

닦은 듯 닦아가지고 와서 머뭇머뭇

내 책상머리에 얹어 놓고 있을 때”

뭉클한 공명이 있었다고 썼다.

 

 

 

뭉클함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눈물과 배려와

연민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가슴 안쪽이 딱딱하게 굳지 않아서

누군가 들고 가는

한 양동이의 물처럼 출렁출렁한다는 얘기다.

 

지핀 불처럼

가슴이 따뜻하다는 얘기다.

이 계절

우리는 또 무엇을 만나서

또 어느 때에

뭉클해져 속울음을 울게 될 것인가.

by/문태준 시인

 



출처 : 우대받는 세대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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