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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직업 가진다는 건 어떤 고통을 선택하는 일"

good해월 2016. 8. 3. 14:15

- '빨강머리 앤…' 출간 백영옥
소설가 되기까지 13번 낙방
"작가는 먹고살기 힘든 직업… 쾌활한 앤을 통해 위로받아"

10년 전 봄에 그녀는 지쳐 있었다. 인간관계에 실패했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에서 멀어졌고 회사에도 사표를 냈다.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빨강머리 앤' 50부작 애니메이션을 봤단다. 주근깨투성이 소녀 앤이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서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는걸요"라고 말할 때 스톱 버튼을 눌렀다. 그 대목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제주도 우도에 가면‘빨강머리 앤의 집’이 있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백영옥이“최대한 앤과 비슷하게 꾸미고”사진을 찍었다.
제주도 우도에 가면‘빨강머리 앤의 집’이 있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백영옥이“최대한 앤과 비슷하게 꾸미고”사진을 찍었다. /아르테
신춘문예를 비롯해 공모에 13번 낙방했던 백영옥(42)은 그해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아 마침내 작가가 됐다. '스타일'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등에 이어 이번에 펴낸 9번째 책의 제목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아르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자신을 위로해준 앤에게 바치는 산문집이다. 백영옥은 "초고를 빨리 쓰고 굉장히 오래 고치는 편이라 출판을 하고 나면 산후우울증처럼 쳐다보기도 싫어진다"면서 "그런데 이 책을 끝내곤 홀가분해졌다"고 말했다.

"살다 보면 기대치를 낮추고 무덤덤해지는 쪽으로 자신을 맞춰 가잖아요. 기대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는 쪽으로. 그런데 앤은 '실망하더라도 기대는 한번 해보겠어요!'라고 말하는 캐릭터죠.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밑으로 가라앉는 나를 포개면서 글을 썼어요. 앤만 보여도 안 되고 나만 보여도 안 되니까 호흡 조절과 기술이 필요했죠."

백영옥은 SNS 프로필을 '상처 수집가'라고 적는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에는 소녀 시절 나눈 앤과의 추억, 인생의 어두운 모퉁이마다 등불이 돼준 앤의 이야기들, 일·사랑·꿈의 좌절을 다독이는 격려의 말을 그러모았다. 작가가 되기 전엔 광고회사·패션잡지·인터넷서점 등에서 일하며 사표를 5번 썼단다. 그녀는 "어떤 직업을 가진다는 건 어떤 고통을 감내할지 선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토록 꿈꾸던 소설가는 정말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었어요. 작가가 된다는 건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글을 써야 한다는 걸 뜻해요. 손목 건초염과 허리 디스크를 달고 살아야 하죠."

백영옥의 초고를 읽는 건 남편 몫이다. 정리되지 않은 긴 글 앞에서 그는 종종 "다음 생에는 시인의 남편으로 살고 싶다"며 투정하지만 늘 엄정한 감상을 들려준단다. 그녀가 문학상 스트레스에 시달리자 '동인문학상 수상' '이상문학상 수상' 수건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요즘엔 그걸로 발을 닦는단다.

백영옥은 이 책에 "노인들이 행복한 건 '시간 시야'가 좁아져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애 상담도 하는데 상처받을까 봐 고백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과 안전해지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을 캐물었다.

"인생이 딱 한 번뿐이라는 걸 아는 순간 또 다른 인생이 시작돼요.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어요. '빨강머리 앤'은 성장 스토리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풍부한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입력 : 2016.08.03


출처 : 해암의 일상
글쓴이 : 해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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