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1.07 03:03
2017년 새해는 정유(丁酉)년이다. '붉은 닭의 해'로 풀어 쓸 수 있다. 丁은 오행상 불[火]과
붉은색, 그리고 酉는 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붉은 닭'은 금계(錦鷄)를 말한다. 이해에 태어
난 아이들뿐만 아니라 국운도 좋다. 공자가 이상국가로 여겼던 주나라 건국 초 금계(봉황)가
출현했다. 그래서 주나라는 붉은색을 숭상했다. '주공해몽전서(周公解夢全書)'에 "닭을 꿈꾸
면 큰돈이 생긴다"고 하였다. 붉은 닭이 귀하게 여겨지는 내력이다.
그런데 어이하여 이렇게 좋은 해에도 어김없이 빈부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점쟁이들은 말한다.
"빈천해질 운명이라면 황금을 얻어도 구리로 변하고, 부자가 될 운명이라면 종이를 주워도 비단으
로 바뀐다. 때를 만날 운명이면 언젠가 때를 만날 것이고, 운명이 그러하다면 끝내 때를 만나지 못
할 것이다."(중국 격언).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너무 허무하다. 없다면 왜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일까? 남명 조식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너무 허무하다. 없다면 왜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일까? 남명 조식
선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시대 학자 성운은 남명의 학문과 덕행이 세상에 퍼지지 못한 것을 두고
"시대 탓인가 운명 탓인가(時耶命耶)"라고 그를 위한 비문에서 한탄했다. 때를 만나지 못한 운명
[命中無時] 탓으로 돌린다. 대학자도 이러했을진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
가? 알 수 없는 미래의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운명 앞에 체념한 이들이 점쟁이들 앞에 머리를 숙인다.
운명을 해독하고자 하는 술수들은 사주·풍수·관상·성명·수상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이론적 틀이
운명을 해독하고자 하는 술수들은 사주·풍수·관상·성명·수상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이론적 틀이
잘 짜인 것이 사주이다. 1000년 전 송나라 때 완성되어 지금까지 여러 변화를 거쳐 유럽과 미국까지
진출하고 있다. 술수 중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의해 명이 정해지는데,
그것이 시간의 흐름[時]과의 부합 여부에 따라 빈부·귀천 등이 정해진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사주 이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조선조 명과학(命課學) 시험 과목들만 보아도 쉽게
그런데 사주 이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조선조 명과학(命課學) 시험 과목들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험 과목들이 강조하는 내용이 다르다. 왜 그러한가. 시대 문제에 대한 대응 논리
였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된다. 송나라 때 농경사회와 유학의 자연관
이 반영된 이론이 나왔다. 유목사회에서 출발한 원나라가 망한 뒤 들어선 명나라 때에는 원나라 때
의 별점(점성술)이 혼합된 사주술이 등장한다.
1600년 전후에는 의약 서적 '본초강목'(1596·중국)과 '동의보감(1610·조선)'으로 대변되는 의약의
1600년 전후에는 의약 서적 '본초강목'(1596·중국)과 '동의보감(1610·조선)'으로 대변되는 의약의
발달이 반영된 사주 이론이 나온다. 다름 아닌 '병약설'이다. 사주팔자 가운데 병이 되는 글자를 찾
아내고(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을 찾아내듯),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되는 글자를 찾아 활용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이다. 19세기 말에는 그때까지 중국에 유입된 서구 자연과학이 반영되
어 '자연학'적 사주 이론으로 거듭난다. 시대 속에 매몰된 개개인을 객관화시킴으로써 그 개개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론 체계였다.
사주 이론은 결코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족집게로 집어내는 '천기누설'이 아니다. 족집게 점쟁이
사주 이론은 결코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족집게로 집어내는 '천기누설'이 아니다. 족집게 점쟁이
는 단언하건대 없다. 더구나 21세기 시대 문제를 해석하는 대응 논리로서 사주 이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남명과 쌍벽을 이루던 닭띠 동갑 대학자가 퇴계 이황이다. 그의 잠언 '숙흥야매잠(夙興
夜寐箴)'은 "계명이오(鷄鳴而寤)", 즉 "닭이 울어 잠에서 깨어남"으로 시작한다. 닭으로 말미암아 깨
어난다. 붉은 닭의 해에는 모두가 깨어나 잘될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된다. 정유년을 기대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