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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손주 생각하는 만큼 자식 키웠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good해월 2018. 5. 28. 07:32

손주 생각하는 만큼 자식 키웠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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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손주 생각하는 만큼 자식 키웠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36)
학창시절, 군대, 자식 자랑…. 금방 뭔지 알아챘을 거다. 맞다.
친구들-직장 선후배나 동료가 아니다-과 만났을 때 주요 화제들이다.
아니, 화제들이었다. 퇴직하고, 환갑을 넘기면서
이야기 흐름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나이 드니 건강과 재테크가 주로 화제에 오른다.
젊었을 적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말술을 마다치 않던 친구들이
하나둘 고혈압, 당뇨, 지방간 등 이런저런 건강 적신호에 직면하다 보니
몸에 좋다는 음식, 처방에 숨은 명의 등 건강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맛집이며 골프 얘기도 단골 화제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넓게 보면 건강 관련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재테크와 정치인데
워낙 여윳돈이 없으니 주식이며 금융 신상품 이야기가 나오면
뒤로 물러앉는 편이다.
정치 역시 분란이 일기 쉬워서 친구들끼리도 피하는 화제이긴 하다.
 
와중에 슬슬 떠오르는 단골 소재는 손주들이다.
외손주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친구도 있지만
60대 중반이면 미취학 손주가 많을 나이어서 그럴 법하다.
한 번은 모임에 나온 한 친구가 팔이 떨린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손주를 안아주느라 그렇단 것이었다.


친구 모임선 손주가 단골 소재
'소중한 사이,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스 화가 게오르기오스 야코비데스(Georgios Jakobides)의 1890년 작품. 할아버지와 손주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중앙포토]

'소중한 사이,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스 화가 게오르기오스 야코비데스(Georgios Jakobides)의 1890년 작품. 할아버지와 손주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중앙포토]

 
아예 외손녀를 데려다 키워주던 친구는
“아침에 눈 떴을 때 손주와 눈이 마주치는 기분을 너희는 모른다”고 했다가
‘손주 바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재 같다든가 영어 단어를 줄줄 외운다든가 등등 손주 자랑질에 눈꼴이 시어
“돈을 내놓고 자랑하라”고 핀잔을 듣는 친구도 나온 마당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식과 손주는 영 다르다.
내 자식 키울 때야 먹고살기도 바쁘고,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귀여운 줄 몰랐다. 어느 날 보니 훌쩍 자라 성적이 좋니 나쁘니 하는
 ‘큰 그림’만 신경 썼을 따름이었다. 
 
한데 손주는 귀엽기만 하다.
이제 책임감은 없는 대신 시간은 많으니 손주가 쑥쑥 커가는 것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언제 걷기 시작했는지, 무슨 말부터 했는지, 무슨 재롱을 피우는지,
얼굴 어디가 엄마를 닮았는지 아빠를 닮았는지 등
표정 하나, 몸짓 하나가 모두 관심거리다.
 
그러다 보니 손주가 족쇄요, 상전이 된다.
웃음 한번 보려고, ‘하부지’ 소리 한번 들으려고
손주에게 ‘아양’을 떨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 친구는 “손주에게 ‘안 돼’ 소리를 자주 했더니 나한테 오기를 꺼린다”고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결국 손주를 안아보기 위해 과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고,
“백화점에서 예쁜 아기 옷을 봤다”는 딸의 은근한 종용에 지갑을
열었다고 했다.
 
돌 지난 외손녀와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면서 일희일비한다. 손녀가 활짝 웃어주지 않거나 잼잼이나
‘만세’를 한번 해주지 않으면 어째 섭섭하다. 손바닥보다 작은 영상으로,
뚱한 늙은이 얼굴 보고 뭐가 신날 게 있을까 싶으면서도 말이다. 그
러면서 반성한다.
“자식 키울 때 이만큼 신경 썼으면 애들이 뭐가 돼도 됐을 텐데”하고.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출처: 중앙일보] 손주 생각하는 만큼 자식 키웠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후기유성 박한곤

 

컴퓨터를 켜고 각종 신문을 훑어본다.

기분이 좋은 뉴스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나마 공감이 가는 좋은 본문 기사를 읽으며

웃을 수 있는 감회에 젖어본다.

 

그래도 시간은 벌써 1시간 훌쩍 가 버리고 여명이 밝아 온다.

책을 읽을 시간을 신문 읽는 것으로 대신한 것 같다.

 

눈에 띄는 신문 기사이기에

웃으며 공감할 친구를 향해 이 글을 울리며 음미한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이 순간이 떠나가듯

떠나가는 소식을 많이 접하니 섭섭함은 자연적 생리현상인가 보다.

한 나이 젊은 사람이 80세를 바라보며 그 나이에는 죽어야지! 하며

함부로 내뱉는다.

그는 60이니, 80은 까마득히 먼 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핏덩이 같은 손주 녀석을 다리고 와 3년을 키워 보냈다.

며칠 전 중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병든 할머니가 KTX 두 시간 타는 것도 힘들어

찾아가 보지 못하고 문자로 축하를 보내는 안타까움,

 

그래도 시간은 이 순간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쓴다.

오늘 삶의 순간을 찬미하고,

 

빛과 공기와 대지를 사랑하자!

 

그리고 우리나라의 번영을 기도하자!

 

새삼 생각나지만, 옅은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말이 있다.

현명한 자에게는 인생은 짧고 무지한 자에게는 인생은 길다.”

 



   


출처 : 아름다운황혼열차(黃昏列車)
글쓴이 : 유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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