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생인데 두 가지 진로를 두고 고민할 때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그게 고민이에요//
2가지 중에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렇게 망설여져요?
그때는 동전에다가 A, B써서 던져서 나오는 대로 가면 되요.
안 그러면 손바닥에 침을 딱 해서..
우리 옛날에 어릴 때 그거 많이 했는데.
길가다가 이쪽 길이 맞나, 저쪽 길이 맞나 잘 모를 때
어.느.길.이.맞.나.하고 딱 때려서 가는대로 가는
간단한데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제 얘기가 답이 안 되었어요?
아니 제 얘기를 못 알아 들었어요?
그거 너무 비과학적인 방식이다. 이렇게 생각하죠.
아니에요. 굉장히 과학적 방식이에요.
왜 그러냐.
내가 이 남자하고 결혼을 해야 되겠다 하는 확률이 80%
결혼하면 문제가 되겠다 하는 확률이 20%이면
본인이 결정할까요? 나한테 와서 물을까요?
이 남자가 조금 괜찮기는 한데 돈도 없고 뭐도 없고...안 되겠다 해서
괜찮은 게 20%나 30%
안 괜찮은 게 70%라고 나한테 물을까 안 물을까?
그러면 나한테 와서
이 남자하고 하려니까 이게 문제고 안 하려니 이게 문제고
이렇게 고민이 되어 나한테 와서 물었다 할 때는
이쪽과 저쪽의 비중이 거의 50대 50에 근접해 있을 때 헷갈리는 거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49대 51이거나 48대 52일 때 이럴까 저럴까
아무리 고민해도 밤에 잘 때는 이렇게 하기로 결론을 내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저렇게 되고.
이거는 양쪽의 비중이 비슷하다는 얘기죠.
양쪽의 비중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해도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동전 던져도 되고, 침 튀겨도 되고 아무 문제가 없다.
밤새 열흘 연구해 봐야 결론이 안 나고,
결론이 나도 마찬가지다. 후회가 된다.
이 길을 가면 저 길에 아쉬움이 있고
저 길을 가면 이 길에 아쉬움이 있고
이 사람을 잡으면 저 사람이 예뻐 보이고
저 사람을 잡으면 이 사람이 예뻐 보이는 거요.
이거는 어떤 선택이 좋으냐의 문제가 인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자기가 책임을 안 지려는 거요.
예를 들면 ‘스님이 될까? 결혼 할까?’ 이런 걸 망설인다.
그러면 결혼을 했을 때 따르는 부족한 점, 내가 어려운 점을 책임을 안 지려하고
스님이 되었을 때 혼자 사는 문제를
그러니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거요.
혼자 살겠다고 하면 혼자 사는데 따르는 나머지 문제를 다 감수해야 되고
결혼하면 맞춰야 되잖아. 그죠.
결혼하고 안 맞춘다. 이러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는 거요.
결혼할 때는 맞춰야 되요.
입맛도 맞춰야 되고, 온갖 거 다 맞춰야 되요. 안 그러면 같이 못살아.
그런데 맞추기 싫으면 혼자 살아야 되는데
혼자 살면 외로움이 따르고 여러 가지 비효율이 따라요.
방 하나에 둘이 살면 되는데 혼자 다 돈 내야 되고.
밥도 한번 하면 둘이 먹을 수 있고 돌아가면서 하면 되는데
혼사서 맨날 해야 되고, 여러 가지 비효율이 따라요.
같이 사는데 좋은 점이 있는 거요.
사랑은 놔놓고라도 같이 살면 효율적이다. 이 말이오.
그런데 효율적인 대신에
그 두 사람의 차이를 서로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 거요.
돈을 빌릴까 말까 할 때는
지금 현실이 궁하니까 빌리고 싶잖아. 그죠?
그런데 빌리면 이자 쳐서 갚아야 되요? 안 갚아야 되요?
갚을 걸 생각하니까 빌리면 안 될 거 같고,
지금 궁함을 생각하면 빌려야 될 거 같고. 이런 거 하고 똑같아.
내가 빌리기로 결심을 했으면
이자 쳐서 갚을 책임을 져야 되고
갚기 싫으면 그 책임을 지기 싫으면 궁해도 안 빌려야 된다.
우리 학생만 이 문제에 부딪히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 인생에 매일매일 그런 문제에 부딪히고 있어요.
그게 어떤 선택이 더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걸 누구한테 묻는다? 점쟁이한테 가서 묻는 거요.
점쟁이는 아무렇게나 얘기해 버려도 괜찮아요.
어차피 49 대 51이기 때문에 점쟁이가 이쪽으로 콱 눌려주는 거요.
그러면 책임을 여러분들이 반분하고 싶잖아.
스님한테 묻는 이유도 나중에 뭐라고 하려고?
“스님이 하라고 그랬잖아요.” 이 얘기 하려고.
그래서 저는 거기 끼고 싶지가 않다. 첫째.
두 번째 어떨 때는 기꺼이 책임을 져주는 거요.
“이리로 해라!” 이렇게 책임을 져주는 거요.
그런데 가능하면 저는 안 끼고 싶은 거요.
내가 뭣 때문에 끼어요.
망설일 때는
자기를 보면 ‘양쪽의 비중이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거기에 망설이는 거는 책임을 안 지려는 거요.
다시 말하면 연애는 하고 싶은데 애 생길까봐 겁난다.
이런 거 다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거든 다 책임을 안 지려는 거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에 대해서 망설이는 이유도 뭘까?
결혼은 하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하면 축하를 못 받고, 재정지원도 못 받잖아.
그러니까 망설여지는 거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돼.
내가 이 사람이 좋다. 나이차이가 나서 부모가 반대하든 사회적 조건이 안 좋아서 반대하든 좋다하면 지원을 딱 포기하면 되요.
어머니를 나무랄 필요도 없어요.
“알겠습니다. 어머니 마음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되는 거요.
자, 뭐라고?
망설임은 뭣 때문에?
책임 안 지려는 거요.
스님이 만약 어떤 여자가 좋다. 손잡고. 좀 걷자하면
손도 잡고 싶고 남의 눈치도 보고 싶고. 이러잖아.
그럴 때 손을 잡으려하면 욕 좀 얻어먹어야 되나? 안 얻어먹어야 되나? 얻어먹어야 되고
욕 얻어먹기 싫으면 손잡아도 뿌리쳐야 되고
그걸 선택을 해야 돼.
그런데 여러분들은 뿌리치고 가서는 ‘잡을 걸’ 하고
잡고 나서는 욕 얻어먹으면 ‘괜히 잡았다’ 하고
이래서 인생이 늘 후회가 생기는 거요.
후회는
무책임성에 따른 겁니다.
여러분들이 딱 어떤 결정을 내든, 결정을 내면
거기에 대한 과보,
인연을 지었으면 뭘 받는다? 과보를 받는다.
과보를 기꺼이 탁 받아들여야 돼.
그러면 문제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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