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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7개월 “학교 왜 가요?”…달라진 건 학교뿐이 아니었다

good해월 2020. 10. 19. 09:58

타임라인‘코로나19’ 사태

‘집콕’ 7개월 “학교 왜 가요?”…달라진 건 학교뿐이 아니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입력 : 2020.10.19 06:00 수정 : 2020.10.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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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교가 문 닫고, 일상이 흔들린 아이는 ‘새 생활’에 익숙해졌다
예전 같지 않은 학교·학생들…교육은 ‘예전 그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학습공백, 교육격차, 기초학력 부진.

코로나19 사태로 어른들이 가장 우려하는 아이들의 변화는 대부분 학업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학교의 기능은 지식 전달과 습득에만 그치지 않는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우려되는 더 큰 변화는 지금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일 수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등 그동안 학교에서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었던 삶의 방식을 더 이상 익힐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일상 대부분을 보내던 공간이었다. 가정 내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공간일 것이다. 코로나로 유례없는 ‘집콕’ 비대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지난 14일 서울 구로파랑새나눔터(나눔터)를 찾은 것은 이러한 궁금증에서였다.

학교가 빠진 일상을 꿰찬 것은 게임이나 채팅이었다. 한 아이는 나이도, 성별도 모르는 ‘게임친구’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학교 밖으로 떠밀려나왔지만, 놀 곳은 마땅찮고 그나마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도 출입이 막혔다. 아이들은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어른들 눈치를 보며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누군가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변화는 아이들의 생각도 바꿔놓고 있다. ‘학교’ 하면 떠올리는 것은 칠판이나 선생님이 아니다. 이미 7개월째에 접어든 온라인 원격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등교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 학교는 피곤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지금의 학교는 또래와 교류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며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하던 예전의 그곳이 아니다.

성태숙 나눔터 센터장은 “매일 등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자기 생활 리듬에 맞춰 온라인 학습을 하는 첫번째 세대인 지금의 아이들은 갈수록 학교에 더 많은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학교 시스템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원격수업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교육과정대로 학기를 진행하면, 진도 나가기에만 바빠 아이들이 학교를 더 싫어할 것”이라며 “학습내용을 추리고 교육방법도 지식 전달이 아닌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센터장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온전한 구성원으로 키우기 위해 돌봄과 교육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파랑새나눔터 앞 공터는 매일 아이들로 북적인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지만 아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운동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놀아야 한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학교 빈자리 메우려한 제도가
되레 학교의 설자리 지워버려

두 아이가 상가건물 입구 계단에 앉아 있었다. 한 아이는 상처가 났는지 양말을 벗어 발등을 살펴보고 있다. 다른 아이는 몸을 잔뜩 구부린 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다. 방과 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대’는 아이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학교에 가도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선생님은 수업을 하고,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듣는다. 책상은 떨어져 있고, 급식도 제자리에서 조용히 먹어야 한다. 끼리끼리 놀던 쉬는 시간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일 뿐이다. 1학기 때만 해도 ‘학교에 가고 싶다’던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 구로파랑새나눔터(나눔터)에서 만난 류진영(8·이하 가명), 김민정(9), 오현철(10), 노주환(11), 김동호(12), 배수현(12), 정민식(12) 등 초등학교 1~5학년들은 학교 문이 닫힌 이후의 일상에 너무나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 “학교는 ‘온라인’이다”

초등학교 1~5학년 학생들이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 구로파랑새나눔터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일상에 대해 “친구와 자주 만나지 못하고 게임과 채팅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최근 등교수업 확대와 관련해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등교 날은 일찍 일어나야 하고
수업시간에 딴짓 못해 싫어”
비대면과 불규칙의 달콤함에
아이들은 학교가 불편해졌다

19일부터 전국 모든 학교의 등교수업이 확대된다. 원격수업 장기화로 인한 학력격차 심화를 우려해온 학부모 입장에서는 등교수업 확대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교 가는 날이 많아진다’는 기자의 첫마디에 아이들은 “싫어요”라고 소리쳤다.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로 주환이는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오전 9시에만 일어나면 되는데, 학교에 가려면 오전 8시부터는 준비를 해야 한다. 민식이도 얼굴을 찌푸렸다. “4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요. 쉬는 시간에도 못 돌아다닌단 말이에요.”

학교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수현이가 “온라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탓에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지금은 더 편해졌다는 얘기다. 현철이는 “(학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가 없어지면 공부는 어디서 하느냐’고 묻자 “집에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학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도입한 원격수업이 어느 순간 학교의 자리를 지워버린 것이다.

영상이 짧아서 온라인 수업을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답은 예상외였다. “딴짓을 할 수 있잖아요. 영상 틀어놓고 과자 먹고, 게임도 하고. 동생한테 다른 것도 틀어놓으라고 해요.” 주환이가 말했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좋은 점이 무엇일까, 다시 한번 물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그런데 지금은 못 노니까”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말 속에는 코로나19로 학습 기능만 남아 있는 학교 현실이 담겨 있었다. 성태숙 나눔터 센터장은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는 친구도 만나고 체육시간도 있는 공간이지, 공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라며 “학교가 교육·학습이라는 본연의 기능에서는 저평가를 받지만, 아이들을 위하는 돌봄 기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운동장은 닫히고 놀이터는 없다

놀이는 게임, 절친은 게임친구
식사도 자는 시간도 아무 때나
‘건강한 교육’이 절실해진 이유

아이들 대부분 집콕생활을 한다. 사실 갈 곳도 마땅찮다. 학교 문이 닫히면서 운동장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민식이는 “학교 가는 날에도 선생님이 놀지 말고 바로 집에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단독주택이 몰려 있는 이 동네에는 이렇다할 놀이터도 없다. 나눔터 앞 공터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지만, 이곳도 아이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어 벤치에는 언제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다. 시끄럽다고 핀잔을 들을 때도 많아 눈치를 보며 놀 수밖에 없다. 차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골목을 배회하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많다.

일부 아이들은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먼 거리까지 다녀오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민식이도 심심할 때는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한 달 전 넘어져 사고가 날 뻔한 후부터는 타지 못하게 됐다. “요즘은 그냥 집에서 게임하고 놀아요. 게임하다 지루하면 TV 보고, TV 보다 지루하면 또 노트북 하고. 그래도 지루하면 자요.”

주환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요일이 제일 심심해요.” 형과 동생들이 있지만, 놀 곳이 마땅찮다보니 매일 집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답답할 때는 어떻게 할까. “그냥 현관문 앞에서 멍하니 바람만 쐬어요.” 민식이가 한숨을 쉬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만 하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학부모들은 “애들이 게임만 한다”고 한탄할지 모른다. 성 센터장은 “아이들이 휴대폰과 유튜브 등에 중독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쳇바퀴처럼 돌다보니 아이들 문화랄 것이 없었다. 놀이터는 유아시설 위주고 청소년들이 잠깐이라도 놀려고 하면 어른들이 내쫓지 않나”라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에 오지 말라고만 했을 뿐, 아이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는 누구도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 “올해는 친구 사귀기 틀렸어요”

1학년 진영이는 학교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입학식은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진행됐고, 봄·가을 체험학습도 가지 못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친구와 거리를 두는 방법부터 배웠다. 같은 반에 19명이 있지만, 그동안 새로 사귄 친구는 2명밖에 없다. “원래 알던 친구까지 하면 우리 반에서 3명 알아요.” 진영이는 마치 그것도 많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아이들이 “불쌍해”라고 입을 모았다. 주환이는 “원래 같은 반은 다 친구인 건데. 친구하자 하면 친구 되는 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5학년인 수현이도 “입학식이 중요해요. 학교 첫인상이 결정되는 날이고, 친구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친구관계도 흔들리고 있다. 같이 어울릴 기회도, 함께 갈 곳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현이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부모님이 못 나가게 해서 카톡으로만 만난다”며 “올해 친구 사귀기는 글렀다”고 말했다.

비대면으로 소통하면서 다툼이 잦아졌다. 문자로 대화하다보니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하기 일쑤다. 약속은 가벼워졌고, 관계를 끊는 법도 간단해졌다. 민정이는 얼마 전 다툰 친구와 아직도 화해를 하지 못했다. “친구한테 ‘우리 집에 올래’라고 물었더니 ‘응’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온다고 했다가 안 온다고 했다가 ‘너희 집에는 재밌는 거 없다’고 자기네 집으로 오래요. 그래서 답장 안 보내고, 전화가 왔길래 안 받았어요.” 그날 1시간 뒤쯤 민정이가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친구가 화면을 꺼버렸다.

성 센터장은 “예전에는 학교에서의 만남을 기초로 또래가 형성됐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온라인상의 결속력이 자칫 부정적으로 강화되면 모임 밖의 친구를 배척하고, 새 친구를 사귀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등 그 관계에만 매몰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호가 끼어들었다. “저는 ‘게임친구’랑 가장 친해요.” 게임친구는 게임 중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가장 친한 게임친구는 ICE라는 닉네임을 쓴다고 했다. 게임친구는 몇 살인지 물었다. 동호는 “몰라요”라고 말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말 속에는 곳곳에 도사린 위험이 담겨 있었다. 동호는 게임친구를 따라 주력하는 게임을 바꾸기도 한다. 게임친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으니 “당연히 만나고 싶다”며 웃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라인 접속시간이 많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불규칙한 생활습관은 아이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수현이는 집콕생활을 하며 자정을 넘겨 잠에 들곤 한다. 간혹 새벽 2시에 자기도 한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 시간에 맞춰 오전 10시쯤 간신히 일어난다. 나눔터에서는 점심식사를 제공하는데, 최근 아이들 대부분이 밥을 안 먹으려 한다. 신체활동량이 줄어든 데다, 느지막하게 일어나다보니 점심때도 밥맛이 없는 탓이다. 성 센터장은 “밥은 안 먹고 아이스크림이며 젤리를 사먹는 등 군것질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공연히 짜증과 신경질을 내는 경우도 늘었다”고 말했다.

방역을 이유로 학교가 문 닫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줄었지만, 위험한 순간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사실상 전무하다. 성 센터장은 “얼마 전 여자아이들이 황급히 뛰어 들어온 일이 있었다”며 “어떤 아저씨가 자꾸 쳐다보며 사진을 찍더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놀 때 다짜고짜 욕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대낮에 자전거를 훔쳐 가는 일도 벌어진다. 이럴 때 누가 아이들을 도와줄까. 1학년 진영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이죠.” 3학년 현철이는 “아무도 안 도와줘요”라고 말했다. 성 센터장은 “동네 커뮤니티가 잘돼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낯선 아이에게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라며 “그러면 아이들은 언제든 위험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학교 문을 닫으면서, 정작 학교 밖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고 있다. 언제 다시 또 원격수업으로 전면 전환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 센터장은 “아이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한꺼번에 교육을 시키던 대규모 양육 시대는 끝이 난 것”이라며 “작은 규모에서 아이들을 따뜻하게 살필 수 있도록 조금 더 세밀한 돌봄·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190600035&code=940401#csidx71b09d8c40dd40c87c3842525e717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