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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속에서 현실을 헤맸다, 아쉬움이 남는다

good해월 2021. 3. 13. 17:52

가상 속에서 현실을 헤맸다, 아쉬움이 남는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3-13 15:47 입력시간 보기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지난 12일부터 오는 12월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 멀티버스>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합니다. 거의 ‘연중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원예술이 뭐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명을 보면 장르를 확장하고 영역 간 경계를 허무는 다학제, 융복합 프로그램이 다원예술이라고 돼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7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여 왔는데요. 올해 다원예술 프로그램의 주제는 ‘멀티버스’입니다.

포스터_MMCA 다원예술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멀티버스는 또 뭐지?

‘멀티버스(다중우주, Multiverse)’는 물리학 가설인 ‘다중우주론(multiple universe)’에서 파생된 용어로, 우리 우주 외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입니다. 영화와 SF소설 등 대중문화에서 다루며 우주와 세계를 인식하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데 활용하는 소재인데요. 이걸 가지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무얼 하겠다는 걸까요? 가상현실, 인공지능, 드론, 자율주행과 같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보고 느끼고 질문할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목표입니다.

▶직접 체험해 봤습니다!

설명만 들어서는 잘 안 와닿지요? 지금 열리고 있는 권하윤 작가의 전시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에 다녀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조성한 프로젝트갤러리가 있는데요. 사전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같은 시간대를 예약한 걸로 보이는 관람객 4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정각이 되어 스태프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5명은 함께 프로젝트갤러리로 들어섰습니다. 35분 정도 소요되는 이 전시 체험의 동시간 관람 인원은 5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VR헤드셋 장비 3개가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서 있는데 갑자기 일행 중 2명이 전시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관람객이 아니라 전시의 안내 및 진행을 맡은 퍼포머(Performer)들이었습니다. 관객으로 위장한 것이지요.

VR장비를 쓴 관람객이 전시장을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의 두 명은 퍼포머들이다. ㅣ올댓아트 권재현

한 퍼포머가 관람객 중 한 명에게 다가가더니 VR장비를 씌웁니다. 헤드셋 안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지 모르지만 관람객은 천천히 걷다가 멈추고 팔을 들었다 내리면서 전시장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퍼포머는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쉬지 않고 몸을 움직입니다.

VR장비 속 가상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참여자를 사이에 둔 퍼포머들이 천천히 무대를 옮겨다니고 있다. ㅣ올댓아트 권재현

‘한 편의 무용극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다른 퍼포머가 다가옵니다. 빤히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런 눈맞춤에 당황한 나머지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VR장비를 씌워줍니다. 가상 공간이 펼쳐집니다. 흰 색의 흐릿한 존재는 근처를 지나는 동반 관람객의 형상입니다. 이들과 격자 무늬의 전자파 그리드를 피해 환상적인 ‘우주 공간’을 걸어다니며 잠시나마 ‘세속’을 잊어봅니다. 퍼포먼의 안내에 따라 형형색색의 공간 구석구석을 옮겨다니며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체험이 끝납니다. 끝나고 나니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일행들의 시선을 신경쓰다 정작 제대로 가상공간에 푹 빠져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하윤 작가는 말하더군요. “VR헤드셋 안에서 펼쳐지는 가상공간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전시장(프로젝트갤러리)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동일한 게 하나도 없다”고요. 그렇겠지요. 전시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고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누구는 우아하고 누구는 뻣뻣하기 그지없을 수 있으니까요. 퍼포머와 관람객의 상호 교감 정도가 동작의 역동성과 구성 및 내용, 전시의 감흥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부연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허구와 현실이 연결되는 순간을 체험하도록 이끄는 것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입니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접점인 참여자들의 몸과 행위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순간에 주목합니다.

권하윤,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3월16일에는 서현석의 을 공개합니다. 서울관 5전시실을 실제 크기와 동일하게 3D스캔한 후 VR로 구현해 VR장비를 쓴 관람객이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 속 전시실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관람객은 가상공간으로 재현된 5전시실에서 실제 공간을 탐색하며 현실과 가상의 괴리, 감각기관의 한계를 경험합니다.

서현석, X(무심한 연극),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5월에는 안정주, 전소정의 <기계 속의 유령>을 서울박스에서 선보입니다. 시속 100~200km로 주행하는 경주용 드론에 자율주행 인공지능을 탑재해 서울박스를 누빕니다. 바닥과 천장에 설치된 구조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드론은 서울박스를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여줍니다. 이 영상은 다양한 이미지들과 나란히 놓여 비선형적, 다층적 시간으로 구성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안정주 전소정, 기계 속의 유령,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6월에는 김치앤칩스가 <헤일로(Halo)>와 <무제>를 각각 미술관마당과 프로젝트갤러리에서 선보입니다. <헤일로>는 수학적 원리를 활용한 99개의 거울장치와 햇빛, 바람, 물과 같은 자연적 요소를 이용하여 물안개로 둥근 태양을 그리는 작품입니다. <무제>는 천체망원경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거울과 정교한 기계장치를 활용해 무한한 차원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은유한 작품입니다.

김치앤칩스, 무제,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8월에는 정금형의 <장난감 프로토타입>을 공개합니다. 작가가 직접 공부해서 만든 DIY 로봇 ‘장난감’의 제작 과정과 작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줄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로봇과 인간,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정금형, 장난감 프로토타입,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지막으로 10월에는 후니다 킴의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가 찾아옵니다. 작가는 LiDAR센서, 컴퓨터 비전 등과 같은 자율주행의 기술을 통해 기계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탐색하고 이를 인간의 사유와 연결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후니다 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2021 ㅣ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전시 구성 및 일정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국립문화시설 실감 콘텐츠 체험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 멀티버스>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프로젝트갤러리를 비롯해 서울박스, 미술관마당 등에서 열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 멀티버스>는 예술의 경계를 보다 확장하는 동시에 지금의 융복합 시대정신을 반영한 프로그램입니다. 상상력의 충전소인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은 최첨단 과학기술과 만난 흥미로운 작품들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

■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 멀티버스
MMCA Performing Arts 20201 : Multiverse
2021년 2월 12일(금) ~ 2021년 12월 5일(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프로젝트갤러리, 5전시실, 서울박스, 미술관마당 외
권하윤, 김치앤칩스, 서현석, 안정주/전소정, 정금형, 후니다 킴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7편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 ‘2020 국립문화시설 실감콘텐츠 체험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사전 예약 통해 관람
*전시와 퍼포먼스 작품 관련 사항, 매월 브로슈어와 홈페이지 통해 안내
*프로그램 일정과 장소, 코로나19로 변동 가능
문의 : 02-3701-9500

자료 및 사진 ㅣ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