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스크랩] 일본 식민지 시절의 사진들...

good해월 2007. 1. 30. 19:13



일본 순화교육



1930년 일본 순화교육 형무소 마당 신궁앞에서 교육을 받고있다.

 

한일 합방 동의 전달 1910년
1910년8월29일 순종이 마침내 한일 합방 조약을 공포하니
이로써 대한제국의 국권은 완전히 일본에 탈취 되었다

부관 연락선



1921년 부산 부관(부산~시모노새끼) 연락선 출항 직전
당시 이연락선은 조선인을 전쟁터 또는 공사장으로 수송 되어
일본 중국 등
제삼국으로 강제노동 에 동원 되었다.

(한많은 이배를 타고간 한국인은 되돌아 오지못했다)

놀이터가된 궁궐



1929년 놀이터가된 궁궐 궁궐처마 밑에 일장기로 장식되고
문짝은 유리로 바꾸어놓고 아동관이라 홍보하고있다

통감부 파출소



통감부 파출소 1909년 1910년
조선은 경찰권을 일본에 위임하는 각서를 조인했다,
사냥개 까지 동원하여 항거하는 독립군 수색 하는데 이용했다

명성황후 홍농도착



명성황후  홍농도착 1897년
홍농에 도착한 대여가 홍살문 입구에서 잠시 대기 하고있다.
한나라의 국모를 잃은 백성들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그결과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공진회 퍼래이드



공진회 퍼래이드 1915년 공진회퍼래이드 광경,
일본전통복장을 한 연주자들이 광화문앞을 지나고 있다.

형장으로 호송되는



1904 형장으로 호송되는 독립투사 눈을가리고
인력거에 태워져 형장으로 가는 독립투사

광화문 입구에는
일장기가 드리워져 경술국치의 비애를 느끼게한다.

옥호루



명성황후(민비) 시해된곳 (옥호루)
명성황후가 친러반일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자,
일제가 일본 낭인배(깡패) 를 동원
1895년 10월 8일 옥호루에 난입 하여 시해함.
일본낭인배들에의해 옥호루에서 시해된후
며칠이 지나 명성왕후의 새끼손가락이 문틈에서 발견되었다.
당시이건물은 궁중의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곳이다,
오른쪽에 아궁이가 있어 나인들이 목욕을 즐기던 부엌이다,
뒷편에 박물관 상단이 보인다.

참고 : 민비는 일제가 명성황후를 함부로 부르기 위해 붙인 것.

명성황후 인산준비



명성황후 인산준비 1897년 궁중내시가 무엇인가 유심히
바라보고있다,
능을 준비했는데 봉우리가 약 40~50 피트나 되었다.
(프랑스인 알렉빅그 촬영)

살기위해 도전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살아 남은어린소녀가
혼자서 짐보따리를 챙기고 있다

일제 수뇌부



일제 수뇌부 1940년 경부 철도 복선 개통식에 참가한
(왼쪽)나카무라 총사령관과
오른쪽 미나미 총독

학도병 출옥



1940년 형무소 출옥당시 모습(학도병)
피골이 앙상한 체구는 X선에 나타난 형상과 같아 보인다

호남선 개통식장



목포부두 호남선 개통식장

괘도 연결식



괘도 연결식 (개통)

통감부



전국 조선 통감부 소속

착취



항의하는 농민 처형 (1905년)
당시 일본통치하에 있는 한국인을 재판없이 체포되어
일본 관헌들에의해 즉석에서 처형되었다,
입은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있어도 볼 수 없는
민족의 애환은국권이 없는 무능정부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중앙에있는 일본관헌은 복부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행사에 강제 동원



한.일행사에 강제 동원 된 기생

항일 학생교화시간

 

1930년 항일 학생교화시간
일장기 좌.우 충효가 무엇을 강요하는 것일까?
모두 죄수복장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족해방 책임자

 

1936년 민족해방 책임자 체포 항일 투쟁본부 책임자 박달씨
우측에서3번째 (딸과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압송되고 있다
심한고문으로 옥사 했다

이승만

 

1904년 좌측이 이승만씨(미국)

광복단 사건



1920년 광복단 사건 발생
광복단 사건으로 인하여 주동자를 즉석에서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고 있다.  

독립신문 인쇄소



독립신문 인쇄소

조선 신궁 참배
 
 

조선 신궁을 참배하는 아침조회 (1936)
모자를 벗고 충성을 다짐하는 광경이다.

조선인 유해



조선 유해 보관소1940 년
전쟁중 소식불명이 된유해가 일본에서 임시 보관되었다가
얼마후 한국에 인도 되었는데 성명을 알 수 없는 유해는
조선이란 보자기에 쌓여 있다.

1930년 시체수송

 
1930 년 시체수송
조선인 시체를 매장 하기위해 중국인 노무자들이 관을
운송하고 있다  

헌병 경찰 발족

 

헌병 경찰 발족 (1910 년)

경무 총감부



헌병 경찰 발족 (1910 년)
일본 통감부에서 경찰관제를 개정하고 경무 총감부를 신설 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초대한 노인에게 일장기앞에서
선서를 강요시키고 있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1920년대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신궁참배(매일 아침마다)
영친왕의 장식 칭호는 영왕입니다.
일제시대에 조선왕실을 격하시키려고 친 이란 단어를 넣어서
영친왕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
순종황제를 이왕으로, 의왕을 의친왕으로 개칭 격하 했다

의병처형



로일전쟁 당시의 의병처형 (1904년)
이와같은 장면은 일본 통치후 3.1 일운동 에도 재현되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손을 뒤로묶고
철사줄로 목을 매어 치명적으로 처형시켰다.
비참한 이광경을 볼 때마다 탄압이 주는
일본의 만행은 무엇을 위한 선택일 것인가

농민 처형



항의하는 농민 처형 (1905년)
당시 일본통치하에 있는 한국인을 재판없이 체포되어
일본 관헌들에의해 즉석에서 처형되었다,
입은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있어도 볼 수 없는
민족의 애환은
국권이 없는 무능정부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중앙에있는 일본관헌은 복부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영천왕 일본유배



영천왕 일본유배 1905년 이등방문은
1905년 11월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초대 한국 총감이 되었다,
영친왕은 11세 어린나이로 도일 했으나 내용은
인질과 다름이없었다.

영친왕의 정식 칭호는 영왕입니다

일제시대에 조선왕실을 격하시키려고 친 이란 단어를 넣어서
영친왕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

순종황제를 이왕으로, 의왕을 의친왕으로 개칭 격하 했다

한말 군인



한말 군인

독립신문 편집



독립신문 편집

일본관리 1925



유혹하는 일본관리 1925
한국민족의 저항을 두려워 했던 일본은
자신들의 정책을 미화하기위해
형식적으로 통감부 시대를 만들어
한국의 모든상권과 행정권리 까지 장악하여
본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펴기 시작했었다.

끌려가는 안중근



1910 년 형장으로 끌려가는 안중근 의사 (당32세)
여순(만주)감옥에 서 형장으로 가는 마자막모습

창경궁 개관식



창경궁 개관식 일장기가 드리워져 있고
서울시민들이 입장하기위해 왼쪽 매표소 앞에 웅집하고 있는
한국관람객

아녀자 신사 참배



아녀자들 강제신사 참배

남산의 현분수대광장 근처에
일본신사와 조선신궁을 참배하고나오는
부녀자들, 손에 든 일장기가 망국의 설움을 느끼게 한다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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