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으로행복

[스크랩] 장엄 등을 밝히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다.

good해월 2008. 5. 8. 10:25
장엄 등을 밝히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다.


속초시 엑스포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제는 청계천에서 미 소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라, 혹 그와 관련된 집회라도 열리나 했는데, 연등행렬을 하는 날이란다. 요즈음에는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행렬을,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미리 진행한다. 기념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가수의 노래고 무엇이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랗게 만들어진 장엄 등뿐이다.  


장엄이란 웅장하고 위험이 있음을 말한다. 4월 초파일 전에 세워지거나, 연등행렬에 사용되는 장엄 등은 각 사찰에서 며칠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든다. 장엄 등에는 북, 용, 연꽃, 탑, 코끼리, 종, 달마 등 다양한 등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채색을 하고, 그 안에 불을 밝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용은 입으로 불을 내뿜기도 한다.

 

 

 

북 등과 황룡 장엄 등. 연등회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4월 초파일에 사용되는 연등은 우리나라의 전통 등이다. 이 전통 등의 역사는 천오백년이나 된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연등행사는 신라의 진흥왕 때부터다. 백고좌회를 통해서 정월 보름부터 황룡사에서 열렸는데,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신라에서는 전사한 병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으로 펼쳐졌다. 고려조에서는 국가적 제전인 봄의 연등회와 가을의 팔관회로 정착이 되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에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주관하는 관청(연등도감과 팔관보)까지 따로 두었을 정도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정월 보름이나 이월 보름에 대부분 연등회를 열었지만, 고려 중엽에 최이가 사월 초파일로 옮겨 갔다고 적고 있다.


작금에 들어서 연등제가 불교의 행사로 축소가 되었으나, 원래 연등제는 고려의 팔관회 등과 같이 종합적인 문화재로의 형태를 띠우고 있었다. 속초 엑스포장에 보이는 다양한 장엄 등을 보면서 내가 속으로 기원을 한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다. 부처님이 이 땅에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제하기 위하여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연등의식이라면, 지금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잉어 등과 나비 등. 장엄 등에는 곤충이나 동물 들도 많이 보인다.


미친 수입 소에게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대운하를 파서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하도록 빌어본다. 그리고 없는 자들의 고통을 모르는 뭇 인간들의 마음에도, 한 가닥 양심이라는 촛불을 밝혀달라고 기원한다. 제 나라 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남의 나라말에 대한 목 바치는 사대주의 사고에서 벗어나기를 빌어본다. 아이들이 지식을 얻어야 하는 학교라는 곳을, 사설 학원화를 만드는 일을 중단하기를 기원한다. 이 땅의 백성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이 땅에서 떠나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해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폐지한 후, 있는 놈들끼리만 잘 살겠다고 개코같은 논리를 펴는 그런 인간들이나, 제나라가 못 미더워 이중국적을 가지려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사라지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기원하다가 보니 부처님도 골이 아프시겠다. 그래서 그 많은 것을 하나로 줄여 간절히 기원한다. 나라의 주권을 가진 국민들을 기만하는, 그런 인간들이 다 사라져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장엄 등 앞에서 두손 모아 빌어본다. 이 땅의 민초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 백고좌회(百高座會)

백좌강회(百座講會)·백좌도량(百座道場)·백좌법회(百座法會)라고도 하고, 인왕경(仁王經)을 강독하는 법회이므로 인왕회(仁王會)·인왕도량(仁王道場)이라고도 한다. 인왕백고좌회는 가인왕경가 호국품에서 국토가 어지러워지고, 여러 재난이 일어나고, 외적이 침입했을 때 100개의 불상과 100개의 보살상과 100개의 나한상(羅漢像)을 모시고 100명의 비구승을 청해다가 가인왕경가를 강독하면 모든 재난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에서는 551년(진흥왕 12) 신라가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침공하여 승리한 뒤, 고구려에서 온 혜량법사(惠亮法師)를 승통으로 백좌강회를 베푼 것이 처음이다. 이후 613년(진평왕 35) 7월에 수나라 사신 왕세의(王世儀)가 왔을 때 황룡사에 백고좌를 차리고 원광법사(圓光法師) 등을 맞아들여 강의하게 하는 등 주로 황룡사를 중심으로 백고좌회가 열렸고, 고려시대에 매우 성행했다. 당시 백고좌회를 연 이유는 국왕의 병을 치료하거나 천재지변을 물리치기 위한 것, 대외전쟁에서의 승리, 반란의 진압 등 주로 호국적인 의미로 일관하고 있다.(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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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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