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교육청이 초등학생 한자 교육을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한글 전용’이냐 ‘한자 병용’이냐는 해묵은 의견 차이보다는 한자 교육이 안그래도 과열인 사교육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왜 ‘한자 교육=사교육’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일까? 한자 교육 관련 고정관념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가정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한자는 꼭 달달 외워야?=한자라고 하면 무조건 천자문 순서대로 하루 몇 글자씩 외워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비단 부모 세대뿐 아니다. 요즘 어린이들이 보는 한자 교재조차 펼쳐보면 글자마다 설명은 적고 따라 쓰도록 된 빈칸은 널찍한, 판에 박힌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하루 몇 자씩 혹은 교재 몇 페이지씩 외우도록 하는 방법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니 꾸준하게 자녀들을 이끌고 가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한자의 기원과 사용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학습지 교사, 학원 교사 등에게 일임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자를 배우는 과정에서 대부분 공인 급수 시험(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한국한자검정시험)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도 사교육을 받게 되는 원인이다. 시험 단계에 따른 한자 순서대로, 집중 출제되는 부수와 획순 위주로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는 편이 급수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현철 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모든 교육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유독 한자 교육만큼은 1980년대 이래 변화가 없다"면서 "많은 학생들이 한자를 지겹고 싫은 것으로 여기는 데는 이런 한자 교육 방식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자 공부 일기로 한다'의 저자인 서울 내발산초등학교 진철용 교사는 "한자는 무조건 한 글자씩 여러 번 반복해서 쓰면서 익혀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직접 가르쳐보니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해봐야 아이들이 한자를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급수 시험에서 높은 급수를 취득하더라도 시험 후에 잊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자, 어떻게 공부해야?=전문가들은 학생들이 한자에 익숙해지고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할 정도로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활 주변의 단어부터, 그것도 쓰기보다는 눈으로 익히는 데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진 교사는 "초등생 생활에는 한자가 별로 없는 듯 보이지만 찾아보면 '국어' '공부' '학교' 등 많은 단어들이 한자로 이뤄져 있다"면서 "이런 단어들부터 뜻을 한자로 풀어보고 생김새를 눈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한자 교육의 바른 출발점"이라고 조언했다.
진 교사는 한자에 대한 감각을 이어가는 방법으로 일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일기를 쓰면서 아는 단어는 한자로 쓰도록 권하고, 되도록 더 많은 한자를 쓰는 방향으로 이끌면 자연스럽게 한자를 반복해서 쓰면서 정확하게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구몬교육연구소의 이순동 소장은 "한자의 부수며 획순도 무조건 외우기보다는 이해를 먼저 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푸를 청(靑)' 부수의 글자로 맑을 청(淸), 청할 청(請), 갤 청(晴), 청어 청(鯖) 등을 알려주고 이 글자들의 뜻이 청(靑)의 푸르다는 뜻과 어떻게 통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획순도 글자를 써보기 전 "어떻게 쓰는 게 편할지 네가 먼저 써보라"고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면 외우지 않고도 익힐 수 있다.
김 교수는 "초등생 이하의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아무래도 놀이나 게임으로 익히는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한자 콘텐츠 개발이 중국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부모와 교사들이 노력해 아이들이 즐겁게 한자를 배우도록 한다면 국문 독해력뿐 아니라 중국어나 일본어 습득력 등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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