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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명동성당 (낮은 곳으로 퍼지는 희망의 종소리)

good해월 2009. 5. 17. 08:31

 

 

 

명동성당  (낮은 곳으로 퍼지는 희망의 종소리)


서울 중구 명동 2가 1번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교회 우리나라 유일의 순수 고딕양식인 명동성당은

 

1785년부터 한국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기도했던 집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뒤 100여 년

 

동안의 박해를 거쳐 비로소 19세기 말 신앙의 자유를 얻으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1892년에 착공했다


설계 감독을 맡은 코스트 신부는 청나라에서 많은 기술자들을 데려와

공사를 진행 시켰는데 성당을 건축할 당시 대체 무슨 집을 이렇게

크게 지을까 ! 하며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공사에 방해가 되었다한다


명동성당은 세 개의 화중석을 갖춘 2층의 장십자형 고딕양식으로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이 69미터 높이 23미터의 건물이다


6년의 대 공사 끝에 처음 설계를 맡은 코스트 신부가 죽고 2년

뒤인 1898년 5월 29일 드디어 푸아넬 신부에 의해 준공되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뾰쪽탑으로 뾰쪽당 집이란 애칭을 갖기도 했던

명동성당의 당시 이름은 종현본당이였고 광복 이후 지금의 명동

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성당 지하에는 19세기 천주교 박해로

 

희생당한 성인 5위와 일반 순교자 4위의 유해를 봉안하고 있는데

순교자들의 성스러운 피가 명동성당을 떠 받들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정신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사적 258호로

지정됐지만 명동성당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그 동안 명동성당은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들이 �아와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장소로서 더 넓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75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들이 인권회복 및

국민투표거부운동을 벌이고 76년 함세웅, 김승훈 신부 외에

재야 인사들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문” 발표 등을 계기로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전원지가 되었던 곳도 바로 명동성당이였으며

 

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던 87년에는 127차례 6만 1천여 명이 이곳에서

집회를 가졌고 해마다 1백여 건의 집회가 끊이지 않은 곳이다


명동성당의 이러한 상징성은 “낮은 곳으로 향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실천적 양심이 바탕 되었는데 함세웅 신부는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세상에 뿌리를 둔 사람들의 모임

이므로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야 하며 명동성당은 쫓기는

 

사람들의 피난처, 거짓의 고발자, 고통 받는 민중과 함께하는

동지, 문화산실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할 것 이라고 말하였다


착한사슴   옮긴글


 sarang

출처 : 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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