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으로행복

<모셔온자료>카터와 김일성,클린턴과 김정일

good해월 2009. 8. 5. 09:19

“카터만난 후 김일성의 사망”

1차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던94년 6월 15일 대북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지미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을 접견한 김일성(촬영시기 94년 6월).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미북 관계는 개선되는 듯 했으나, 김일성은 불과 한 달 뒤인 7월 8일 사망했다.
북한 당국은 사망 34시간만에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김일성 사망은 그가 사망 직전까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여 왔고 불과 20일 후인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김영삼 대통령과 분단 이후 최초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터라 놀라움과 함께 부자간 갈등설을 중심으로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겹쌓이는 헌신적 과로로 인해 7월 7일 극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됐고 곧 심장 쇼크가 합병됐다”고 사망 원인을 발표했다.

그의 죽음은 장기간 군주적 권력을 행사해 온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독재자 중 한 사람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는 의미를 남겼다. 이 외에도 그는 6·25 남침을 도발해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과 함께 민족사의 퇴행을 가져왔고, 수많은 대남 도발과 위해 공작으로 남북 갈등을 증폭시켜 온 중심 인물이었다. 독재 세습왕조를 구축해 기형적 사회주의를 고집하면서 북한을 전근대적 낙후 속에 묶어 둔 역사 발전의 순리를 역행한 장본인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김일성의 생애에 대해서는 과장과 왜곡, 그리고 날조라는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돼 왔다. 김성주가 본명인 그는 20대부터 중국 동북지방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련으로 가서 소련군 일원이 됐으며, 8·15 광복이 되자 일약 김일성 장군이 돼 평양으로 개선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33세였다. 그러나 소련의 배경을 등에 업고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면서 북한의 권력을 장악,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반세기에 달하는 유례없는 장기집권의 불행한 역사를 남긴 것이다.김일성의 장례는 열흘 후인 7월 17일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레닌·마오쩌뚱처럼 미라로 처리돼 금수산 주석궁에 존치됐다.

 김일성, 그는 자신이 남긴 민족사의 비극과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 앞에 과연 망자의 회한은 없을지 궁금할 뿐이다.

 

“북한 지금 김일성 사망 수준 위기 봉착”

작년 발생한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수명이불과 1년 남짓 남은 것으로 최근 외신에 의해보도되고 있는 김정일(左)과 함께한 김일성(촬영시기 미상).

북한은 곧바로 김정일 체제로 이어졌다. 물론 그가 이미 실질적 지도자로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즉시 김일성의 공식 직책과 권력을 승계받을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3년여 동안 소위 ‘유훈통치’를 내세워 군 최고사령관 명의만으로 북한을 통치해 나갔다.그런 현상은 당시 북한이 당면하고 있던 정치·경제적 어려움과 김정일 자신의 상징적 카리스마의 한계에 기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일은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경제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을 것이고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하는 데 김일성 신정(神政)의 후광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훈통치를 통해 자신과 김일성을 동일시하는 선전선동을 강화하면서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자신에게 이입하는 작업에 주력했던 것이다.김정일이 국방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것은 자신이 그의 아버지처럼 우상화되고 카리스마를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강압적 통치 수단을 택한 것이며, 엄청난 국제적 압박과 반대급부를 예상하면서도 핵실험을 강행, 핵 무장에 집착한 것도 자신의 위대함을 인정받으려는 강박관념의 결과로 분석된다.특히 김일성 사망으로부터 2000년까지 6년 동안 유난히 ‘고난의 행군’을 강조했는 바 이것도 300만 명이 굶어 죽는 전대미문의 참담한 식량난으로부터 야기될 주민들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시사월간지 신동아(新東亞)는 지난 2005년1월호에서 말년에 접어든 김일성의 대외 개방정책에위기를 느낀 김정일이 부친을 암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주장했다.


올해 북한이 김일성 사망 당시에 필적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 KDI는 최근 작성한 '2009년 상반기 북한경제 동향 보고서'에서 현재 북한이 당면한 어려움은 핵위기와 김일성 사망이 겹친 지난 1994년에 비견할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KDI는 권력승계 문제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북한 경제가 올 상반기뿐 아니라 하반기에도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현재 북한 경제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며 경색된 남북관계도 상품교역이나 위탁가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클린턴 방북,김정일위원장 만나야 성과도 변수도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4일 평양 방문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직전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듯,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지를 보일 수 있으며 이번 방북에서 상당한 성과도 예상된다. 또한 94년 김일성이 카터와 만난뒤 23일 후에 사망했듯이 김정일이 클린턴과 만난다면 역사는 15년만에 또 운명이 어떻게 반복될련지도 지켜보아야 할 일인듯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