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찾아서] 일 왕실 비밀 쥔 ‘또 하나의 백제’ / 정경모 이제 우리나라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로 주목을 돌려야겠는데, 제15대 침류왕이 어린 태자를 남기고 죽자(기원후 385), 그 아우가 ‘태자는 연소하다’는 이유로 조카를 제치고 자기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것이 제16대 진사왕이었으니 그는 즉, 왕위를 훔친 찬탈자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진사왕 8년(392) 7월, 고구려왕 담덕(호태왕)이 4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로 쳐들어와 여러 성읍을 빼앗은 다음, 10월에는 백제 북방의 요충인 관미성을 함락시켰소이다. 관미성은 예성강 연안에 있는 현재의 조읍포인데, 이곳은 고구려와의 국경을 지키는 중요한 군항이었던 것이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사왕은 관미성을 회복할 생각은 안 하고 구원에서 열흘 동안이나 사냥을 즐기고 있던 중, 11월에 무슨 이유인지 구원 행궁에서 죽었으므로 진사왕의 조카, 즉 침류왕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 아방왕이 되었소이다.(392) 여기까지는 삼국사기의 기술인데, 놀라운 것은 진사가 죽고 아방이 왕위에 오르는 이 장면에 난데없이 <일본서기>의 오진천황이 등장하여 삼국사기보다도 더 자세하게 진사왕이 죽은 이유까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외다. 일본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소이다. ‘오진 3년(392) 11월, 일본의 오진왕은 진사왕의 행태에 분개한 나머지 가신들을 백제로 파견하였는바, 가신들은 진사왕의 시해를 요구하여 죽이게 한 다음, 아화를 세워 다음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진 3년인 동시에 진사왕 8년인 392년, 오진천황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오이다. ‘관미성의 함락이 10월, 구원에서 열흘 동안 진사왕이 사냥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것이 11월, 이 소문이 오진에게 전달되어 분격한 나머지 백제의 수도 한성(현재의 서울)으로 가신들을 파견하여 구원 행궁에 있는 진사왕의 시해를 요구하고 다음 왕으로 아방왕을 옹립한 것이 역시 11월.’ 이잔국이 멸망한 396년은 ‘아방왕 5년’이고 ‘오진천황 7년’에 해당하는 해인데, 일본서기의 오진 7년 항을 보면 이해 9월 고려인·백제인·신라인 등 대량의 이민들이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외다. 호태왕비가 행방이 분명치 않은 듯이 적어 놓은, 이잔국의 국왕(일본서기가 말하는 오진)이 일본으로 도피한 396년이 일본황실이 시작되는 해인 것이외다. 호태왕비가 말하는 이잔국은 주몽의 아들형제 온조와 비류 중 형인 비류가 세운 또 하나의 백제였던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
'애국으로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고인돌은 역사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0) | 2009.11.17 |
---|---|
[스크랩] 1m50cm 일제 저주의 쇠말뚝 전격 공개 (0) | 2009.11.17 |
[스크랩] 해외 유출 문화재와 그 반환 (0) | 2009.11.17 |
[스크랩] 美 위스콘신대 도서관서 대동여지도 발견 (0) | 2009.11.17 |
[스크랩] "독도, 일본(日本)땅 아니다" 1946년 대장성 법령 발견 (0) | 2009.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