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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깡통 차는 세입자, 미소 짓는 건설사

good해월 2012. 7. 30. 12:49

깡통 차는 세입자, 미소 짓는 건설사

시사INLive | 고제규 기자 | 입력 2012.07.27 10:01

서울 강서구에 사는 박민수씨(가명·39)는 전세를 구하려 보름간 발품을 팔았다. 출퇴근 때문에 경기도 용인시로 이사할 계획이지만 매물 자체가 많지 않았다. 아파트값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매매는 사라지고, 전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셋값이 그동안 크게 올랐고, 박씨는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추가로 대출받아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박씨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다. 그의 호주머니 사정에 맞는 '물건'은, 요즘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는 '깡통 아파트' '깡통 전세'였기 때문이다.

아파트 시세보다 빚이 더 많아서 경매로 처분해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아파트를 '깡통 아파트'라고 한다. 박씨가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소개받은 아파트가 그랬다. 집주인은 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2억7200만원을 융자받았다. '채권 최고액'(은행이 주택 융자를 한 뒤 해당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하는 금액. 실제 융자액의 120~130%로 설정된다)은 3억4000만원이었다. 박씨가 전세금 2억4000만원을 주는 경우, 집주인의 채무는 5억8000만원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4억9000만원이다. 집주인은 채무(5억8000만원)가 시세(4억9000만원)보다 9000만원이나 많다. 이 아파트의 전세금이 주변보다 싼 이유는 '깡통'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뉴시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월세 가격을 알리는 시세표가 붙어 있다.

채권 미회수금 2009년 이후 가장 높아

요즘 전세 세입자들 사이에 깡통 아파트 경계령이 요란하다. 최근 한 경제지는 법원 경매가 진행된 수도권 아파트를 조사한 결과, 채권자(금융권)들이 회수하지 못한 금액(미회수금)이 지난 6월 한 달 동안 623억700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09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액수다. 미회수금은,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이 상환불능 상태에 처한 주택들을 법원 경매로 처분했으나 낙찰 가격이 낮아 회수하지 못한 금액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런 집에 사는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금융기관이 1순위 채권자인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79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한 번에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 대출이 59조1000억원, 거치 기간이 끝난 분할상환 대출이 19조6000억원이다. 다행히 만기 연장률이 90%에 이르고 있어, 당장 가계에 부채 폭탄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금융당국은 전망한다. 그럼에도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 심리적 공포감이 적지 않다.

깡통 아파트는 '하우스 푸어' 증가, 집값 하락, 전셋값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현상이다. 깡통 아파트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그때는 집값 폭락으로 외환위기 전에 맺은 전세 계약금보다 매매가가 낮게 형성되어 아파트를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는데, 이를 일컫는 용어가 깡통 아파트였다. 이후 아파트 값이 치솟으면서 사라졌던 깡통 아파트가 2008년을 기점으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박씨가 계약하려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는 2008년 분양한 미니 신도시급 단지이다. 분양가는 3.3㎡당 1500만원대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한 민영 아파트로 분양되었다. 당시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높았다. 경제지를 비롯한 언론은 앞으로 값이 더 올라 '분양 불패'로 통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2년 뒤 입주와 함께 이 아파트는 소송에 휘말렸다. 시세가 분양가보다 밑돌면서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형성된 것이다. 계약자들은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며 시행사와 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0.75㎡(36평) 기준으로 당시 분양가는 5억4800만원이었다.





ⓒ뉴시스 5월11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5·10 부동산 대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입주 2년 뒤 집주인들의 현실은 어떨까. 박씨가 계약하려던 아파트 단지 한 동의 등기부등본을 전부 떼어보았다. 2010년에 입주한 아파트 한 동은 33가구로 이뤄졌다. 회사 보유분이 1개 미분양되어 32가구가 산다. 면적은 120.75㎡ 동일 평형이다.

32가구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집주인을 연령대별로 따져보면 30대는 12명, 40대가 15명, 50대가 2명, 60대 이상이 3명이었다. 평균 나이는 42세였다.

융자가 한 푼도 없는 가구는 5가구뿐이었다. 대출 없이 제 돈으로 매입한 사람 5명 가운데 3명은 30대 초반이었다. 이 중 한 사람은 강남권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32가구의 평균 채권 최고액은 2억5282만원에 달했다. 채권 최고액이 가장 많은 가구는 빚이 5억5400만원에 달했다. 집주인은 40대 초반. 제2금융권을 포함해 아내 앞으로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채권 최고액만으로 시세를 웃돌 정도다. 4억원 이상 채권 최고액이 잡힌 가구는 3가구. 집주인은 30대 후반(2명), 40대 초반(1명)이었다. 3억원 이상 융자를 끌어 쓴 가구는 15가구나 되었다. 3억원 이상 채무자 가운데 30대가 4명, 40대가 7명, 50대가 1명, 60대 이상이 3명이었다. 이들 중 70대 세대주의 채무는 3억1000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매월 이자로만 100만원 이상 은행에 내고 있는 셈이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현재 급매가는 분양가보다 6000만원 정도 낮게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다 등록세, 취득세, 그동안 낸 이자 등을 합치면 집주인이 많게는 1억원 정도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도 매매 거래가 뜸하다"라고 말했다.

'깡통 아파트'를 호재로 삼는 건설업계

이런 수억원대의 빚을 진 집주인들이 이자 부담이라도 줄이기 위해 전세를 놓게 되면서 '깡통 아파트' 시비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조차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깡통 아파트를 소개하겠는가. 보통 은행 융자와 전세가를 합친 금액이 시세의 60~70% 선인 아파트까지만 중개한다"고 말했다.

한편 건설업계는 깡통 전세와 깡통 아파트를, 정부에 부동산 규제 완화를 압박하는 호재로 삼고 있다. 건설업계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외에 분양가상한제 폐지, 주택 전매제한 추가 완화,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 등 규제 완화로 아파트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깡통 아파트로 인한 서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식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가 세입자를 규제 완화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민수씨는 결국 전세금 2억4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했다. 다만 계약서에 집주인이 전세금으로 은행 융자를 갚아야 한다는 특약을 집어넣었다.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계약 당일 박씨는 집주인과 은행까지 동행해 전세금으로 융자금 일부를 갚도록 했다. 집주인의 채무가 1억원으로 줄어드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출처 : 서동열
글쓴이 : 연수구지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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