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명량대첩 관련 추정 임란직전 총통 발굴
최고급 청자도 쏟아져, 기린형·오리형 향로뚜껑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597년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이 최상급 고려청자와 함께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이 일대에 대한 수중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진왜안(1592)이 일어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올해 임진왜란 때 사용했을 총통 3점과 석제(石製) 포환을 발굴했다고 28일 말했다.
총통 3점은 모양과 크기가 길이 58㎝, 지름 3㎝로 거의 같으며 모두 다음과 식의 명문이 확인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兩/匠尹□永"(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량/장윤□영 : 만력 무자녕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
무게는 세 근 아홉 냥임. 만든 사람은 장인 윤□영)
연구소는 "명문은 제작월과 무게를 적은 부분에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내용은 똑같다"면서 "만력 무자년(1588)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총통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명칭. 3점 모두 '小(소)'와 '勝(승)'자 사이에 각각 'エ'와 'マ'라는 부호가 발견됐다.
연구소는 이런 부호가 "한자에서 같은 글자를 표시하는 부호로서 '소소승자(小小勝字)' 총통이라고 적은 것"이라면서 "승자총통류는 조선 중기의 개인용 화기로 이번에 발굴된 소소승자총통은 전하는 기록이 없는 최초의 발견 사례"라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개인용 화기로는 승자(勝字), 차승자(次勝字), 별승자(別樣字), 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이 문헌에 보이며, 실제 유물도 전하거나 발굴됐지만 '소소승자총통'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총통을 발굴한 지점 주변에서 돌 포탄인 석환(石丸)도 발견됐다. 지름 8.6cm, 무게 715g인 이 석환 역시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성낙준 소장은 "오류리 해역은 명량대첩이 일어난 울돌목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이번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해역에서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발굴됐다"면서 "앞으로 임진왜란과 우리나라 무기 발달사, 해전유적지인 전라우수영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들 총통은 제작 시기와 장소가 임란 직전 전라좌수영이며, 더구나 발견된 장소가 명량대첩의 격전장과 인접한 곳이라는 점 등을 볼 때 이순신 및 명량대첩과 관련한 유물임이 거의 분명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소승자총통은 조선 중기에 제조된 화기 중 하나로 불씨를 손으로 점화해 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구조다. 승자총통을 개량한 것으로 신기비결(神器備訣)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이런 화기는 대승총(大勝銃), 차승총(次勝銃), 소승총(小勝銃)으로 구분되지만 소소승자총통이라는 명칭은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까지 파악된 소승자총통은 모두 24점이다.
오류리 수중 문화재는 지난해 11월 이 해역에서 고려청자를 도굴한 일당이 붙잡히면서 존재가 드러났다.
이에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탐사를 시작해 고려청자 파편과 닻돌을 확인하고 올해 본격 조사를 시행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임진왜란 관련 유물 외에 양질의 순청자(純靑磁)와 상감청자(象嵌靑磁), 조질(粗質) 청자가 기종별로 다양하게 발굴됐다.
가장 주목을 끄는 청자는 기린형 향로뚜껑. 국보 65호로 지정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靑磁 麒麟有蓋 香爐)에 못지않은 최고급품이며 기존과는 다른 특징도 보인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나아가 오리형 향로뚜껑도 발견됐다. 이 청자는 뚜껑 바닥까지 꽃 모양으로 장식했다.
이들 양질 청자는 맑은 비색(翡色)을 띠며 규석을 받쳐 구웠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들 양질 청자는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까지 강진에서 왕실이나 귀족층이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12세기 전반부터 14세기 대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한 다른 도자기도 발굴됐다.
이런 성과에 따라 문화재청은 수중발굴조사 해역을 중요문화재(사적)로 가지정해 보호하고, 2차 수중발굴 조사는 수온이 상승하는 내년 5월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오류리 해역은 고려시대에는 주요 청자운반 항로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해전 장소 중 한 곳이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12.11.28>
도굴꾼이 안내한 고려청자와 조선총통
진도 오류리 앞바다, 제2의 마도로 부각
지난해 11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와 문화재청 안전기준과는 문화재 전문도굴단을 검거했다.
이들이 팔려던 고려청자 출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유물이 진도 오류리 해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씨뮤즈호라는 탐사선을 이용해 이 해역 일대에 대한 긴급 탐사를 실시해 청자접시 등 32점을 수습했다. 적지 않은 해저 유물이 매장돼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연구소는 지난달 4일 1차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대상지는 450×200m 구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10×10m 작은 구역으로 나누어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구역별로 30cm~1m 깊이로 흙을 제거해 나간 결과 탐사조사 15%, 발굴조사 0.8%를 완료한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과를 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임진왜란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통 유물을 찾아냈는가 하면, 고려청자의 최고급 유물을 건져낸 것이다.
하지만 조사가 쉽지는 않았다. 오류리 앞 쩍끔만(彎)과 주변 해역은 수심이 3.5~20m에 수온은 13℃ 정도였지만, 수중 가시거리는 0m였으며 조류가 제일 약할 때도 가시거리는 최대 10~30cm였다. 사실상 암흑이나 마찬가지인 해저 상황이었다.
이번 발굴성과는 도굴꾼이 직접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주꾸미잡이 과정에서 보고된 태안 마도 앞바다 해저발굴과 비교될 만하다.
◇ 제2의 마도, 바닷속 경주로 부각하는 진도 앞바다
이번 해저 발굴대상지는 울돌목이라는 바닷길목에서 동쪽으로 5㎞가량 떨어진 지점의 내륙으로 들어간 만에 위치한다.
이 일대 탐사결과 곳곳에서 해저 유물의 흔적이 감지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문환석 수중발굴과장은 "이번 발굴조사 시작 이전 일대 해역 탐사결과 닻돌 9점을 수중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닻돌이 있다는 것은 이곳에 침몰 고대선박이 있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닻돌 9점이 반드시 침몰선박 9척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선박이 울돌목을 넘지 못하고, 혹은 그 과정에서 침몰했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오류리 앞바다는 바닷속 경주라 일컬으면 무수한 해저유물을 쏟아내는 태안 마도 앞바다에 비견될 만한 곳으로 꼽힌다.
이런 특징을 지니는 까닭은 울돌목이 물살이 가장 거센 연안항로 길목으로 통하는 까닭에 이를 통과하기 직전이나 통과한 다음, 오유리 앞바다를 운항선박들이 중간기착지로 이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돌목은 태안 마도 인근 난행량과 강화의 손돌목, 그리고 심청전 이야기로 유명한 예성강 하구의 임당수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가장 통과하기가 어려운 바닷길목으로 통했다. 이런 곳 인근일수록 당연히 침몰선박이 많기 마련이며, 그런 까닭에 이번과 같은 해저발굴성과를 낸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이 명량대첩에서 유독 이곳으로 왜선을 유인해 대승을 이끈 것도 이곳의 바닷물길 특징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나아가 울돌목은 이 일대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이었다. 먼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비용 문제 등이 만만치 않아 위험한 줄 알면서도 고려시대에도 강진에서 생산한 청자를 개성이나 임시수도 강화도로 실어나르는 선박이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혀가 보이는 기린형 향로뚜껑
◇ 최고급 청자
이번에 발굴한 도자기는 양질의 순청자(純靑磁)와 상감청자(象嵌靑磁), 조질(粗質)청자를 망라한다. 기종 또한 다양하다. 수준이 떨어지는 청자에서 최상급 청자까지 고루 나왔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 양질의 청자 몇 점은 특히 관심을 끈다. 향로나 붓꽂이 등 특수한 용도로 쓴 청자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 고급 청자는 맑은 비색(翡色)을 띤다. 제작시기로 보면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까지로 추정하며, 사용자는 중앙의 왕실이나 권력층이었을 것이다.
가장 놀랄 만한 청자는 기린형 향로뚜껑. 이런 청자는 오직 4점만이 보고됐을 뿐이다. 국보 제65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필두로 국립중앙박물관과 디아모레박물관, 그리고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각각 1점이 소장됐다.
이번 진도 출토품은 기존 기린형뚜껑 향로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형태적 특징도 발견된다. 예컨대 기린 꼬리를 말아올린 도안은 처음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유물이 모두 출토지 불명인 데 비해 이번 것은 그것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이런 청자 중에서는 가장 진귀한 유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와 맞먹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유물인 셈이다.
오리형 향로 뚜껑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2점과 기타 개인소장품 몇 점이 알려졌지만 모두가 출토지 불명이다. 더불어 오리 모양이 양감이 풍부하고 섬세한 문양을 지녔으며, 뚜껑 바닥까지 꽃 모양으로 장식했다는 점 등에서 특징을 보인다. 이 역시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청자투각연봉형붓꽂이도 비록 일부가 깨져나가기는 했지만, 기존에 알려진 유물이 극히 희귀하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12.11.28>
40억대 기대한 도굴범들, 구매자가 1억 부르자 내분
동료 도굴범 제보로 들통
작년 초 진도군청에 진도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도굴했다는 도굴범의 폭로성 제보가 들어왔다. 문화재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공조 수사를 벌인 결과 드러난 내막은 이랬다.
잠수부 출신 도굴꾼 10명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고려청자 등 문화재급 보물 34점을 건져 올려 팔려고 했던 것. 하지만 장비와 자금을 댄 경남 고성의 골동품 중개상 박모씨와 도굴범들 사이에 수익 분배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겼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이영권 경위는 "시가 40억원짜리 보물급 고려청자 향로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도굴범끼리 내분이 생겼다"고 말했다. 골동품상 박씨가 향로의 얼룩을 벗기기 위해 화학약품을 쓰면서 청자 본래의 자연미가 퇴색했다. 구매자도 값을 후려쳐 '단돈 1억원'을 부르면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도굴범 간 내분은 의도치 않게 '제2의 신안 보물선'을 기대할 만한 발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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