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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석만의 인간혁명]AI 불평등 ‘프레카리아트’ 계급사회 온다, 2500년전 중국의 설계자가 있었다

good해월 2017. 12. 3. 18:53

[윤석만의 인간혁명]AI 불평등 ‘프레카리아트’ 계급사회 온다

2017년 10월23일자 '더뉴요커'는 커버 스토리로 AI와 로봇이 활성화 된 미래의 모습을 다뤘다. 표지 그림에선 분주히 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AI 로봇과 구걸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졌다. [더뉴요커 홈페이지]

2017년 10월23일자 '더뉴요커'는 커버 스토리로 AI와 로봇이 활성화 된 미래의 모습을 다뤘다. 표지 그림에선 분주히 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AI 로봇과 구걸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졌다. [더뉴요커 홈페이지]


‘내복(內服)단’ 혁명을 아시나요?  

 ‘바츠’라는 지역에서 일반 평민들이 군주의 폭정에 맞서 지배계층을 무너뜨린 사건인데요. 혁명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채 내복 같은 홑옷을 입고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바츠해방전쟁’입니다.  
 

AI와 플랫폼 소유 여부에 따라 양극화
상위 0.001%가 부와 권력 독점한 사회
99% 이상은 단순노동과 기본소득 연명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 미래학자들
"기술발전 혜택 나눌 로봇세 등 도입해야"
과학의 발전 속도만 아니라 방향도 고민


 당시 바츠의 지배계층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DK)’라 불리는 기사 집단이었습니다. 바츠의 군주인 아키러스는 DK 계급을 전면에 내새워 바츠 지역의 물자를 독점하고 세율을 올려 평민들을 압박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했고 반항하는 이들은 처참하게 참수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키러스에 반대하는 또 다른 50여명의 기사들이 성을 급습해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붉은 혁명’이었죠. 이들은 세율을 0%로 내리고 폭정을 끝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키러스의 반격에 이들의 집권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맙니다. 이후 아키러스의 압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바츠의 시민들 사이에선 조금씩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아키러스의 지배력이 약한 지역부터 크고 작은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죠. 급기야 제대로 된 무기와 갑옷도 없이 혁명에 참여하는 시민들, 이른바 내복단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 여 간의 긴 전쟁 끝에 시민들은 결국 아키러스와 DK 세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바츠해방전쟁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봐왔던 수많은 시민혁명의 사례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기존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점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실제 세계가 아닌 ‘리니지’라는 게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란 거죠. 리니지에선 플레이어 한명 한명이 기사·마법사 같은 캐릭터를 부여받아 가상 세계에서 실제와 같이 살아갑니다. 
리니지는 사용자가 선택한 캐릭터로 온라인에 접속해 가상 세계에서 삶을 살아가는 대규모 역할게임이다. [엔씨소프트]

리니지는 사용자가 선택한 캐릭터로 온라인에 접속해 가상 세계에서 삶을 살아가는 대규모 역할게임이다. [엔씨소프트]


 바츠해방전쟁은 2004~2008년 리니지2 게임의 ‘바츠’ 서버에서 있던 이야깁니다. 소위 ‘만렙’ 유저들이 DK라는 혈맹을 조직해 게임 속 자원을 독점하자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 힘을 모아 이를 타도한 것이죠. 이들은 기본 아이템으로 제공되는 내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무기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결된 시민의 힘은 독재자를 끌어내리는데 충분했죠.
 
 이처럼 게임이든 실제든 어느 사회가 전복되는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양극화와 불평등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해지고, 둘째는 불평등을 자력으로 바꿀 수 있는 계층 이동 가능성이 없어지게 되는 경우죠. 우리 역사에선 14세기말의 고려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간악한 도둑들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 그 규모는 한 주(州)보다 크기도 해 산과 강을 경계로 삼았다. 남의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라고 우기며 주인을 내쫓는 경우도 많았다. 빼앗은 땅의 주인이 대여섯 명이 넘기도 해 각자 세금을 걷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사(高麗史)』
1451년 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 고려말 부와 권력을 손에 준 권문세족의 부패 상황이 자세 묘사돼 있다. [중앙포토]

1451년 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 고려말 부와 권력을 손에 준 권문세족의 부패 상황이 자세 묘사돼 있다. [중앙포토]


 여기서 ‘간악한 도둑’은 권문세족을 지칭합니다. 이들이 소유한 땅이 워낙 넓어 산과 강을 경계로 토지를 나눴다고 합니다. 농민들에게 여러 명의 주인이 각자 세금을 걷어갔고 제때 내지 못하면 돈을 꿔주어 고액의 이자를 갚게 했습니다. 그 빚을 갚지 못한 백성들은 노비로 만들었죠. 백성들이 삶이 너무 곤궁지면서 ‘송곳 하나 꽂을 땅(立錐之地·입추지지)’이 없다는 말도 이 때 나왔습니다.  
 
 1451년 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高麗史)』는 당시의 시대상을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부를 독차지한 귀족들은 과거가 아닌 ‘음서(蔭敍)’를 통해 벼슬을 대물림 하고,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세습하며 거대한 부를 축적했죠. 결국 위에서 말한 2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고려는 멸망하고 맙니다.
 
 불평등의 심화와 계층 이동성의 부재는 비단 과거만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도 진행 중에 있고 미래엔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 특히 4차 혁명으로 불리는 기술의 발전 시대엔 지금보다 양극화·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2016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도 미래엔 “자본과 능력, 지식을 가진 엘리트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중하위 계층은 갈수록 불리해져 중산층 붕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달 발표된 서울대 유기윤 교수팀의 연구는 이 같은 예측을 더욱 구체적으로 뒷받침 합니다. 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90년 미래 사회는 크게 4계급으로 나뉩니다. 페이스북·구글처럼 플랫폼과 최첨단 기술을 소유한 기업인 0.001%가 최상위층을 차지하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인기 정치인·연예인 같은 스타 0.002%가 두 번째 계급을 형성합니다.  
 
 그 다음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AI가 3계급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 즉 99.997%는 단순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한다는 거죠. 이들은 사회 일자리의 대부분을 AI에 빼앗기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앞서 인간혁명 1회에서도 살펴봤듯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가짜 직업’과 ‘기본 소득’으로 연명할 가능성이 큽니다.

 1계급은 전체의 0.001%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 플랫폼을 통제하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극단적 양극화 사회가 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AI의 등장으로 2030년엔 전 세계에서 20억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단순 노동자가 될 거란 이야기죠. 이러한 99.997%의 다수를 최근에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말로 부릅니다. 플랫폼과 AI가 주축인 사회 구조에 종속돼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계급이란 뜻입니다. ‘불안정하다(Precario)’는 이탈리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처음 쓴 단어입니다.
가이 스탠딩이 쓴 '프레카리아트'의 한국어판 표지.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박종철출판사]

가이 스탠딩이 쓴 '프레카리아트'의 한국어판 표지.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박종철출판사]

 
 가이 스탠딩은 “노조를 통해 종신 고용과 사회보험이 보장됐던 프롤레타리아트와 달리 프레카리아트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큰 ‘위험한 계급’이다”고 말합니다. AI에 밀린 인간 노동자의 가치는 계속 낮아지고 종국에는 빈곤한 절대 다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죠. 사회구조가 더 이상 불평등을 감내할 수 없게 될 즈음엔 ‘바츠해방전쟁’과 같은 혁명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유수의 미래학자와 의식이 깨어 있는 사회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新 계급사회가 형성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하기 전에 AI와 같은 최첨단 테크놀러지의 결실을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최근 논의되는 ‘로봇세’ 등이 대표적입니다.  
 
 십여년 간 세계 최대의 부호였다가 얼마 전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업자)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빌 게이츠는 지난 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엔 소득세와 사회보장세처럼 각종 소득이 부과되고 있다”며 “이들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과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의 일을 대신한 로봇에게도 그 만큼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로봇세 도입에 긍정적 입장입니다. 저커버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로봇과 AI에 세금을 매기면 AI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고까지 제안합니다. 로봇과 AI의 자동화를 통해 얻는 결실을 어느 한 기업의 수익으로만 독점하도록 하지 않고 온 사회와 함께 나누자는 생각입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AI가 미래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에 앞서 각 국가는 로봇세 등을 도입해 소외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포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AI가 미래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에 앞서 각 국가는 로봇세 등을 도입해 소외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포토]


 실제 유럽의회도 2016년 5월부터 로봇세 도입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비록 로봇세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올 2월에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이라며 법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로봇에게 인격권을 주고 언젠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둔 거죠. 과세를 하기 위해선 일반 사람과 같은 ‘시민격’, 기업과 같은 ‘법인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래 사회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세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이대로 우리 사회를 놔둔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겁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우리가 가장 성공적인 경제 체제로 믿어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자본론’을 쓴 토마 피케티와 같은 인물이 대표적입니다.
 
 피케티는 지난 200여 년 동안 미국과 유럽 등 자본의 흐름과 경제 구조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자산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주식·부동산 등 수입)이 경제성장률보다 커지면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겁니다. 즉,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돈이 돈을 버는’ 자산소득의 증가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는 뜻이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는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하고 누진세를 늘려 부의 재분재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포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는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하고 누진세를 늘려 부의 재분재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포토]


 특히 자산은 세대를 걸쳐 세습되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한 기회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까지 지적합니다. 피케티의 해법은 다소 급진적이죠. 누진세를 강화하고 글로벌 자산세를 걷자고 합니다. 어느 한 국가에서만 이런 조치를 취할 경우엔 다른 국가로 자본이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연대하자는 의미에서 ‘글로벌’ 자산세를 신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피케티의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낮습니다. 하지만 우린 성장 못지않게 분배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특히 미래 사회에는 지금보다 기술의 생산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기에, 그 기술을 소유한 자본의 성장률이 훨씬 커질 겁니다. 반면 인간의 노동 생산성은 정체되거나 낮아지면서 자본과 노동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겠죠.
 
 결국 ‘로봇세’를 신설하자는 빌 게이츠의 주장이나, 그 돈을 AI로 일자리를 뺏긴 인간에게 ‘기본소득’으로 돌려주자는 마크 저커버그의 제안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울러 AI와 같은 최첨단 기술과 플랫폼을 독점한 기업과 개인이 국민 다수의 견제와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사회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미래학자들의 주장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그린 SF 영화. [토탈리콜]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그린 SF 영화. [토탈리콜]


 영화 ‘토탈리콜’은 2048년 극단적으로 양극화 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구의 대부분은 오염으로 황폐화 되고 일부 지역만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남습니다. 최상위층의 지배계급은 지금의 영국인 ‘브리튼’에 모여 살며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죠. 하늘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삶의 편의를 높여줍니다. 도시는 깨끗하고 안전합니다.
 
 반면 대다수의 하층민들은 ‘컬러니(식민지)’라 불리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생활합니다. 잿빛 하늘에선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거리엔 마약과 범죄가 끊이질 않습니다. 컬러니의 시민 중 일부는 ‘폴’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브리튼으로 출퇴근 합니다. 지구의 핵을 관통하는 수직 열차로 지구 반대편까지 17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갖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은 거리의 부랑자로 남게 됩니다.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그린 SF 영화. [토탈리콜]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그린 SF 영화. [토탈리콜]


 영화는 컬러니의 시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독재를 일삼는 브리튼의 수상 코하겐과 이에 맞서 싸우는 전직 정보요원 하우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전체에서 앞서 우려했던 미래의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죠. 기술 발달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소수이며, 대다수는 현재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극화의 벽은 매우 공고해 쓰러뜨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는 상상과 허구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AI와 같은 기술문명의 발전을 제도와 문화, 인간의 관점에서 깊이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미래에 대한 어두운 상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운전대도 제대로 잡지 않은 상황에서 엑셀레이터만 세게 밟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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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4차 혁명시대, 인성이 최고 실력이다

마블 히어로들의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제 멋대로이며 개성 강한 다른 히어로들도 올곧은 신념과 바른 품성을 가진 그 앞에선 선한 팀원이 된다. [영화 어벤저스]

마블 히어로들의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제 멋대로이며 개성 강한 다른 히어로들도 올곧은 신념과 바른 품성을 가진 그 앞에선 선한 팀원이 된다. [영화 어벤저스]


“오직 고귀한 자만이 묠니르(Mjolnir)를 들 수 있지.”

 영화 ‘어벤저스(The Avengers)’의 원작 만화에선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거대한 산도 평지로 만들어 버리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놓고 어벤저스 멤버들이 내기를 하죠. 힘깨나 쓴다고 생각하는 히어로들이 나서 신비의 망치를 들어보려 합니다. 그러나 괴력을 가진 헐크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아이언맨도 꿈쩍조차 못합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저스의 리더인 이유
"싸움실력은 부족해도 바른 품성 돋보여"

다보스포럼 "협업능력이 미래 핵심역량"
구글도 스펙보다 인성 바른 인재 1순위
4차혁명, 다양한 가치·문화 조화능력 필요

논리와 추론, 수학적 능력은 AI 못 따라가
인간은 공감능력, 도덕적 판단 앞세워야


 그 때 토르가 웃으면서 말하죠. “묠니르는 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라고요.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왕인 오딘의 아들로 천둥의 신입니다. 그 때 어벤저스의 리더인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망치를 움켜쥡니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 상황이 벌어지죠. 로저스가 묠니르를 드는 데 성공한 겁니다. 로저스의 고결한 인품을 알아본 묠니르가 자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인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들고 있다. 신비의 영물인 '묠니르'는 신 이외에 오직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마블]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인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들고 있다. 신비의 영물인 '묠니르'는 신 이외에 오직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 [마블]


 오늘 인간혁명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흥행을 했던 영화 어벤저스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어벤저스는 사상 최고의 히어로들만 모아놓는 팀 ‘쉴드(Shield)’의 이야기죠. 쉴드에는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토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영웅들이 있고 이들이 한 팀이 돼 지구를 지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팀의 리더가 캡틴 아메리카, 즉 스티브 로저스라는 사람이란 거죠.
 
 사실 로저스는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매우 ‘평범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레이저를 쏘며 하늘을 나는 아이언맨이나 불사의 체력과 강력한 힘을 가진 헐크, 천둥의 신 토르 등과 비교했을 때 전투 능력은 그들에게 훨씬 못 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저스가 어벤저스의 리더가 된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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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로저스는 키도 작고 깡마른 허약 체질의 젊은이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몸이 약해 군대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죠. 그러나 그의 바른 품성과 올곧은 신념이 눈에 띄어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죠. 이를 통해 일반인보다는 몇 배 강한 힘과 스피드를 얻게 됩니다. 이후 냉동인간이 돼 잠들었다가 70년 만에 깨어나 어벤저스의 일원이 되죠.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기위해 군인되고자 했던 로저스는 허약한 신체때문에 여러 번 입대를 거절당한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신념과 바른 품성이 눈에 띄어 강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만들어주는 '수퍼 솔저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뽑힌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기위해 군인되고자 했던 로저스는 허약한 신체때문에 여러 번 입대를 거절당한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신념과 바른 품성이 눈에 띄어 강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만들어주는 '수퍼 솔저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뽑힌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어벤저스의 멤버들은 각기 개성이 강하고 모두 한 ‘성깔’ 하는 캐릭터들입니다. 이들을 하나로 모아줄 리더는 가장 똑똑하거나 힘센 사람이 아니었어요. 가장 올곧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로저스만이 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었죠. 그 덕분에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성 강한 히어로들도 로저스만큼은 믿고 따르게 된 겁니다.
 
 로저스는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언맨에게 고운 말을 쓰라며 매일같이 잔소리 합니다. 헐크의 화를 잠재울 수 있는 것도 그가 좋아하는 여성인 블랙 위도우와 로저스뿐이죠. 로저스는 전투할 때도 다른 히어로들과 대조됩니다. 다른 히어로와 달리 아무리 악당이라도 웬만해선 살상을 하지 않고 때려서 기절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의 무기는 방패 하나가 전부예요. 어떨 때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만큼 공격도 방어 위주로 합니다.  
 
 만약 어벤저스에 로저스가 없었다면 팀 ‘쉴드’는 매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꼴통’ 집단이 됐을 확률이 큽니다. 바른 품성을 가진 로저스가 팀을 조화롭게 이끌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팀워크를 보이지 못했을 거란 뜻입니다.
팀 쉴드의 히어로들. [영화 어벤저스]

팀 쉴드의 히어로들. [영화 어벤저스]


 어벤저스처럼 우리 사회엔 각자의 분야에서 훌륭한 능력을 갖춘 ‘히어로’, 즉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는 전문성이 더욱 깊어지고 분화되겠죠. 이처럼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 될수록 머리를 맞대고 협업을 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더욱 많아집니다. 특히 ‘초연결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 혁명시대에는 다양한 가치를 조율하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능력이 필수로 여겨집니다.
 
 2016년 다보스포럼도 미래사회의 인재가 갖춰야할 핵심역량 5가지 중 하나로 협업능력을 꼽았습니다. 아울러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이끌어내고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관리 능력도 핵심역량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은 “4차 혁명시대에는 상호 의존과 연결이 심화되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팀을 이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합니다. 
구글의 새 캠퍼스 조감도.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한가운데에 대형 '은색 텐트'를 칠 예정이다. 부지 규모는 7만5000㎡로 이 안에 연구소, 카페, 사무실, 공연 장소 등을 채워 넣고 공원과 광장을 배치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연합뉴스]

구글의 새 캠퍼스 조감도.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한가운데에 대형 '은색 텐트'를 칠 예정이다. 부지 규모는 7만5000㎡로 이 안에 연구소, 카페, 사무실, 공연 장소 등을 채워 넣고 공원과 광장을 배치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연합뉴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구글입니다. 구글은 미래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기업으로 꼽히기도 하죠. 이런 구글에는 매년 입사지원서를 내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300만 명이 넘습니다. 이중 0.23%만 채용되죠. 매번 다른 질문과 평가로 질문자를 심사합니다. 라즐로 복 구글 인사담당 수석부사장은 지난해 발간된 그의 책 ‘일하는 원칙’에서 “구글은 영리하기만 한 게 아니라 겸손하고 성실한 지원자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구글은 인재를 뽑을 때 바른 품성을 가장 중시합니다. 복은 2014년 2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적 겸손’ 등 구글이 중시하는 5가지 인재상을 제시했습니다. 단순히 머리가 좋거나 스펙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책임감 있고,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구글이 원하는 인재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5가지 기준 중 전문지식은 가장 덜 중요하다. 머리에 있는 지식보다 필요한 정보를 한데 모으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능력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지적 겸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만일 똑똑한 사람이 ‘지적 겸손’을 갖추지 못한다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다른 팀원이나 상사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과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상대를 존중·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바른 인성’을 갖추는 것이 지금의 사회, 나아가 4차 혁명시대엔 필수 능력이라는 겁니다. 

 사실 최근까지도 인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치부됐습니다. 대학입시에서 또는 기업채용에서 인성은 중요한 평가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성적과 필기시험, 스펙 중심으로 사람들을 줄 세워 뽑다보니 인성은 뒷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선 똑똑함·스펙보다 협업과 공감, 예절과 같은 인성역량이 대세가 될 겁니다.
 
 우리가 흔히 똑똑하다고 정의하는 것들, 예를 들어 논리와 추론 능력, 수학적 사고력 등은 앞으로 인간이 AI(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울러 주입식 교육과 일방적으로 습득한 지식은 더 이상 쓸모없어지게 되죠. 대신 AI가 할 수 없는 것들,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아는 인성역량은 인간 고유의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인성은 권장만 하고 마는 가치·덕목이 아니라 필수로 갖춰야 할 ‘실력’이 될 거라는 이야깁니다.
패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중앙포토]

패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중앙포토]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입니다. 오픈된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저커버그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유명하죠.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은 저커버그의 리더십 유형을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코치’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수평적으로 권한을 배분하고 팀 단위로 책임 있게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각 선수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에 충실하며 선수들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지난해는 자기 재산의 99%(52조원)를 사회 환원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저커버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함께 착한 부자로 불립니다. 이처럼 저커버그가 출중한 능력뿐 아니라 바픈 품성까지 갖추게 된 것은 그의 타고난 성품보다는 어릴 적부터 그가 받은 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커버그가 졸업한 필립스 엑시터 고교가 그랬습니다.
저커버그가 졸업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이 학교에선 수업과 생활의 모든 밑바탕에 인성교육이 깔려 있다. [필립스 엑시터]

저커버그가 졸업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이 학교에선 수업과 생활의 모든 밑바탕에 인성교육이 깔려 있다. [필립스 엑시터]


 필립스는 ‘고교판 하버드’로 불리는 미국 최고의 명문고 중 하납니다. 학교의 수업과 생활의 밑바탕에는 모두 인성교육이 깔려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약하고 선하지 않은 지식은 위험하다”는 학교의 철학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죠. 이는 1781년 존 필립스 박사가 건학 이념으로 삼은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학교 곳곳에는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이란 뜻의 라틴어인 ‘Non Sibi sed Omnibus'라는 말이 쓰여 있죠. 교사들은 늘 “항상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타적 인재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 학교는 또 공부에 대한 정의부터 남다릅니다. 공부는 ‘남에게서 뭔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지식을 함께 나누며 지혜를 키우는 것’이라는 거죠. 교사가 미리 주제를 정해 주면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해 발제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교사는 수업 진행의 최소한 역할만 할 뿐 일방적 강의는 하지 않고 학생들이 팀을 짜 발표와 토론을 합니다. 
저커버그가 나온 필립스 엑시터 고교에선 전 과목을 토론식으로 수업한다. [필립스 엑시터]

저커버그가 나온 필립스 엑시터 고교에선 전 과목을 토론식으로 수업한다. [필립스 엑시터]


 이런 그의 공부법은 대학에서도 계속됩니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 로마예술사 수업을 듣던 친구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그가 만든 웹사이트에 작품 사진과 글을 올려 공유하자는 것이었죠. 다수 학생들은 저커버그의 반응에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학생들이 저커버그와 함께 게시판에 댓글을 달고 토론을 벌이며 함께 공부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는 어땠을까요. 도서관에서 혼자 책에 파묻혀 있던 학생들보다 함께 토론했던 친구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후에 저커버그는 친구들과 함게 사용했던 웹사이트를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했고, 고교 시절 자기 학교의 출석부 명칭을 따 ‘페이스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쯤 되면 그의 고교 생활이 저커버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겠죠.
엑시터의 출석부에는 학생 얼굴 사진이 실려 있어 '페이스북'이라 불렸다. 맨 아래 오른쪽이 저커버그. [필립스 엑시터]

엑시터의 출석부에는 학생 얼굴 사진이 실려 있어 '페이스북'이라 불렸다. 맨 아래 오른쪽이 저커버그. [필립스 엑시터]


 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공부의 목적이 자기의 자아실현, 본인의 성공과 출세에 있다는 뜻이었죠. 그러나 저커버그가 학교에서 체득한 공부의 목적은 ‘배워서 남 주는 것’입니다. 공부의 방식 자체도 협업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죠. 협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고요. 4차 혁명시대에 가장 중요한 창의성도 협동하지 않고선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그였기에 페이스북 경영도 협업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처럼 앞으로의 사회에선 저커버그와 로저스 같은 인성역량이 더욱 중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육도 인성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주입식 수업과 줄 세우기 입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미래에 필요한 건 인성역량인데, 오히려 인성을 깎아먹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교육의 방식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인간혁명 2회 ‘학교의 종말’ 편에서 살펴봤듯 지금과 같은 19세기 교육 시스템으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방식을 바꾸는 것과 함께 또 한 가지 필요한 고민은 교육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거냐 하는 거죠. 지금처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교육을 계속할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을 하도록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버드대의 덱스터 게이트. 밖에서 학교 안으로 들어갈 때는 '학교에서 지혜를 키우고' 나갈 때는 '졸업한 뒤에 사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중앙포토]

하버드대의 덱스터 게이트. 밖에서 학교 안으로 들어갈 때는 '학교에서 지혜를 키우고' 나갈 때는 '졸업한 뒤에 사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중앙포토]


 늘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에는 우리처럼 웅장한 모습을 한 정문이 따로 없습니다. 마을과 통하는 조그만 문들이 여러 개 있을 뿐인데요, 그 중에서도 ‘덱스터 게이트’란 곳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문의 맨 위에 쓰인 문구가 하버드의 철학을 잘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는 ‘enter to grow in wisdom’, 나갈 때는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라고 쓰여 있죠. ‘대학에 와서는 지혜를 배우고, 졸업한 뒤엔 더 나은 세상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하버드는 성적과 스펙보다 인성과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별해 뽑죠. 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만점을 받고도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의 목표가 어떻게 바뀌어야할지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사례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인공지진 등 사람 욕심이 재앙 불러

영화 '2012'. 지진이 난 도심 한복판으로 비행기가 날고 있다. 영화는 고대 마야문명에서 전해오는 예언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구 멸망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 2012]


영화 ‘2012’는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지진과 해일로 인류가 멸망해 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등 재난영화의 거장 롤랜드 에머리히가 메가폰을 잡았고 2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입니다. 2009년 개봉해 국내에서만 5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 세계적으로 7억7000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미국 셰일가스 추출로 인위적 지진 증가
미 전문가들 30년내 규모 9.0 '빅원' 올 것

스위스 지열발전소, 지진 불러 2009 폐쇄
2008 쓰촨성 대지진, 인근 댐 원인론 제기
지진·홍수·사막화 등 인간 활동 재해 급증

인공물, 1㎡당 50㎏씩 지구 표면 덮을 양
자연훼손 하는 기술 혁신, 멸망 앞당길 뿐
공중정원 등 7대 불가사의중 4개 지진 붕괴

 영화의 모티브는 고대 마야문명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예언입니다.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이 일직선이 되면서 중력과 자기장이 변해 끔찍한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죠. 어디까지나 허구적 상상력에 기초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대지진이 닥쳤을 경우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의 순간에 놓인다. [영화 2012]

세계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의 순간에 놓인다. [영화 2012]


 문명이 빚어 놓은 고층 빌딩과 거대한 교량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람들은 잿더미로 변한 도심 한복판에 매장됩니다. 이때 미리 재앙을 예측한 각국의 수뇌부들은 준비해뒀던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띄웁니다. 문제는 한 좌석 당 10억 유로를 낸 사람들만이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다는 거였죠. 영화는 지구 멸망의 순간까지 빚어지는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2012’가 고대 예언에 근거한 SF 영화라면, 2015년 개봉한 ‘샌 안드레아스’는 좀 더 현실성이 높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연결되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을 소재로 했습니다. 캘리포니아를 관통하는 샌 안드레아스는 길이 1200㎞가 넘는 초거대 단층입니다. 일부 지질학자들은 이곳에서 향후 30년 안에 규모 9.0의 ‘빅 원(Big one)'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9.0은 2011년 1만5000여명의 사망자를 냈던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규모입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

 
 영화는 후버댐이 붕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저수용량이 소양강댐의 11배인 후버댐은 높이 221m, 댐 하단 부분 두께가 201m에 이르는 미국에서 가장 큰 댐입니다. 후버댐 건설엔 콘크리트 660만t이 사용됐는데 이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왕복 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규모 9.0의 지진은 미국 서부를 초토화 시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가 반으로 갈라지고 로스앤젤레스의 마천루들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힘없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이 그저 허구로만 보이지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도 ‘샌 안드레아스’가 주기적으로 지진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선 규모 8.1의 지진이 생겨 3000여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죠.   

영화 속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가 지진과 해일로 두 동강이 나기 직전의 모습. [영화 샌 안드레아스]


 실제로 미국 지질연구소는 미국 전역이 샌 안드레아스 등 지진으로 인해 1억5000만 명이 인적·물적 피해를 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지진에 따른 물적 피해는 4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피해는 대부분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주 등 서부 해안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특이한 점으로 그동안 주요 지진대가 아니었던 중부 평원 지역에서 지진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클라호마와 오하이오 주에서 ‘인간 활동’에 따른 지진이 늘고 있다는 것이죠. 주원인은 셰일가스입니다. 가스를 추출하기 위해 땅 속 깊이 시추공을 뚫고 그 안으로 물과 화학물질을 흘려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지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죠.
셰일가스 추출하는 과정. [그래픽=김주원기자] [자료제공=미국 에너지정보청]

셰일가스 추출하는 과정. [그래픽=김주원기자] [자료제공=미국 에너지정보청]


 2014년 미국 코넬대 케이티 케러넌 교수팀은 ‘사이언스’ 지를 통해 셰일가스 추출이 지진을 일으키는 원인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시추공을 통해 고압의 액체를 주입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를 매립하는 것이 지진을 활성화 시킨다는 설명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오클라호마 지진이 2009년 이전엔 연간 1~2회였지만 셰일가스 채굴이 급격히 늘어난 2014년 이후엔 하루 평균 1회씩 지진이 감지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월에는 지진이 연달아 발생해 셰일가스 추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죠.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내는 지진을 재난 전문가들은 ‘인위적 재해’라고 합니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도 인위적 지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규모 8.0의 대지진이 일어나 8만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죠. 지진의 원인을 연구했던 중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진앙지 원촨에서 5.5㎞ 떨어진 156m 높이의 쯔핑푸 댐이 지진을 유발했다고 주장합니다. 쯔핑푸 댐은 단층선에 550m 떨어진 위치에 지어졌는데, 이 곳에 최대 3억2000만t의 물이 저수되면서 지진대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거죠. 영화 ‘샌 안드레아스’의 첫 장면이 후버댐 붕괴로 시작하는 것도 이 같은 인위적 지진을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2008년 대지진이 났던 중국 쓰촨성에서 지난 8월 다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2008년 대지진이 났던 중국 쓰촨성에서 지난 8월 다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포항 지진의 원인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각에선 ‘자연발생’ + ‘인위적’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진한 고려대 지질학과 교수가 진앙에서 2㎞ 떨어진 국내 최초의 지열발전소 건설이 영향을 미쳤을 거란 주장을 한 거였죠. 지열발전은 200도에 가까운 지하 지점(약 5㎞)까지 시추공 뚫고, 거기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앞서 셰일가스 추출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추공을 뚫어 지반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 비슷하다는 거죠. 물론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의 원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스위스에선 지열발전소가 지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06년 바젤에서 지열발전소가 가동하자 얼마 후 규모 3.4의 지진이 도시를 덮쳤습니다. 정부 조사 결과 발전소를 다시 돌리면 지진 발생 확률이 15%가 높아진다고 나왔습니다. 이로 인한 물적 피해는 5억 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고 분석됐고요. 결국 바젤의 지열발전소는 논란 끝에 2009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물론 이는 바젤의 사례이기 때문에 포항 지진의 원인에 대해선 정확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진 속단해선 안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발생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상학습백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발생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상학습백과]


 그러나 지나친 ‘인간 활동’이 재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진과 해일, 화산 등은 자연 활동의 일부이긴 하지만 사람이 환경을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자연을 지나치게 변형하면서 인위적 재앙이 늘고 있는 것이죠. 세계 재해 통계에 따르면 1940년 20여 건에 불과했던 큰 자연재해는 2000년대 이후 400건 대로 증가했습니다. 도시화와 삼림 개발로 인해 홍수가 많아지고 사막화가 촉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도시가 많아지면서 홍수의 발생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비상학습백과]

도시가 많아지면서 홍수의 발생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비상학습백과]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인간이 문명을 갖게 된 건 마지막 1분(농업혁명 이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의 구성은 크게 생명권, 암석권, 대기권, 수권 등으로 나뉘는데 마지막 1분의 시간 동안 기술권(문명권)이 생겼습니다. 인간이 기술을 통해 바꿔버린 지구의 새로운 영역을 뜻하죠. 대표적인 게 도로와 건축물입니다. 영국 레스터대의 연구에 따르면 기술권에 인간이 건설한 인공물의 총량은 30조t에 달한다고 합니다. 1㎡당 50㎏씩 지구 표면 전부를 뒤덮을 수 있는 양입니다.
 
 특히 지구 곳곳을 신경망처럼 연결하는 도로는 인간에겐 편리한 문명의 혜택이지만 지구 입장에선 찢어진 상처와도 같습니다. 도로는 생태계를 갈라놓고 분절된 땅들을 마치 고립된 섬처럼 쪼개 놓습니다.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약 3600만㎞의 도로가 존재하는데, 이는 생태계를 60만 개의 조각으로 흩뜨려 놨다고 합니다. 더욱 심각한 건 1㎢ 미만의 좁은 땅 조각들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는 거죠. 큰 조각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덜 한 극지방과 시베리아, 아마존 등뿐입니다.  
인간에겐 문명의 혜택인 도로가 지구에겐 생태계를 갈라놓은 상처와 같다. 빨간 곳은 도로가 밀집돼 생태계가 망가진 곳, 파란 곳은 도로가 적어 상대적으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사이언스]

인간에겐 문명의 혜택인 도로가 지구에겐 생태계를 갈라놓은 상처와 같다. 빨간 곳은 도로가 밀집돼 생태계가 망가진 곳, 파란 곳은 도로가 적어 상대적으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사이언스]


 고대의 신화와 역사에는 인간이 지나친 욕심을 부려 자연을 과도하게 변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과거 그리스인들이 정한 고대의 ‘7대 불가사의’가 대표적인 예죠.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오리엔트(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인들은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우죠. 그 때 그리스인들이 정한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이 바로 고대의 ‘7대 불가사의’입니다.
 
 이 중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바빌론의 공중정원,  로도스 섬의 헬리오스상 등이 지진으로 파괴됐습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상은 화재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전쟁을 통해 사라지고 말았죠.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밖에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왼쪽 위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마우솔로스 능묘, 로도스섬의 헬리오스상,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위키피디아]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바벨탑과 함께 바빌로니아인들이 이룩한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상징합니다. 공중정원은 기원전 5~6세기경 벽돌로 높은 벽을 쌓고 그 안을 흙으로 메워 정원을 꾸미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층마다 만국에 존재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아름다운 새와 동물 등이 살게 했죠. 정원에 필요한 물은 노예들을 부려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왔습니다.  

 그러나 공중정원은 치수의 목적이 있다거나 가뭄에 대비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실용적 목적을 갖고 있진 않았습니다. 바빌론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고향인 페르시아를 그리워하는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고 하죠.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이후 지진으로 파괴됐다고 합니다.  
높은 건물 위에 만들어진 공중정원. [위키피디어]

높은 건물 위에 만들어진 공중정원. [위키피디어]


 바벨탑 역시 공중정원을 지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명령으로 축조됐다고 합니다. 현재로 치면 높이가 무려 90m를 넘는 당시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건축물이었죠. 이렇게 높은 바벨탑을 세운 이유는 지상을 다스리는 왕이 하늘에 있는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고 하죠.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선 바벨탑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 세상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해오다가 한 들판에 자리를 잡고 벽돌을 빚어냈다. 사람들이 말했다.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고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게 하자.’ 그러자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그러고는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하나님이 원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러 개로 나누고 서로 흩어져 살게 하는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탑을 높이 세우려고 했던 사람들은 혼란 속에 뿔뿔이 흩어졌고 훗날 오해와 불신 속에 서로 다른 말을 쓰며 떨어져 살게 됐다고 하고요. 구약 속에 짧게 전해지던 이 이야기는 조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 37-100)가 쓴 ‘유대인 고대사’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가 덧붙여져 널리 확산됐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자만이 신을 뛰어넘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났고 신의 노여움을 사 벌을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1563년). [중앙포토]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1563년). [중앙포토]


 물론 이는 성서와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선조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지나친 문명의 발전과 그로 인한 인간의 자만을 경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미국에서 셰일가스로 인해 지진이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무분별한 지구 변형이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현실을 경고하기 위해서 말이죠.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전에 없던 과학기술의 혁신을 예고합니다. 오랜 지구의 역사에서 모든 생물 종은 자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살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지구를 자기 마음대로 변형하며 바꾸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에선 더 많은 지구 변형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그로 인한 지구의 반작용(이를 테면 지진과 해일, 기후변화와 같은)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발전이 더 이상 자연을 훼손시키고 지구를 아프게 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개미`, '제3 인류' 등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중앙포토]

`개미`, '제3 인류' 등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중앙포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제3 인류’는 살아있는 지구를 묘사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위해를 가할 때 지진과 해일, 허리케인 등을 통해 경고합니다. 자연재해가 곧 인간에게 전하는 지구의 메시지인 것이죠. 우리가 지구의 말을 들을 순 없지만, 어쩌면 자연은 그동안 우리에게 수많은 경고를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젠 그 경고를 더 이상 흘려들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소크라테스·공자·석가모니 공통점은

아테네 학당(1509~1510). 라파엘로는 인류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을 한데 모아 놨다. 어두웠던 중세가 끝나고 교육과 문화, 예술, 과학이 꽃피웠던 르네상스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정중앙엔 손을 위로 들고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아래로 가리키며 현실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그 왼편엔 이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중앙포토]


소크라테스와 공자, 석가모니의 공통점은 뭘까요? 3명 모두 예수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는 분들이죠. 각기 동서양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제외한 위 3명만의 같은 점은?
 

BC 5세기 동서양이 함께 피운 인문의 꽃?
2500년 전 동서양 공통 정신문화 전성기

그리스 200여 도시국가 다양한 학문 활동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요람
'철기 보급'과 '문자 확산'이 인문 발달 촉진

AI 기술혁신 앞둔 지금, 인문정신 되살려야
관용과 개방, 다문화 정신이 미래문명 핵심


 이번 ‘인간혁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들은 모두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신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웠던 주인공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거죠.
 
 석가모니(BC 563년 ~ BC 483년)가 가장 맏형이고, 그 다음이 공자(BC 551년 ~ BC 479년)와 소크라테스(BC 470년 ~ BC 399년) 순서입니다. 비록 사는 곳은 떨어져 있었지만 활동 기간은 대략 기원전 5세기경으로 3명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기 자신이 속한 문명에서 정신문화의 원류가 됐습니다.  

네란자라 강가의 숲에서 명상에 잠겨있는 석가모니. [중앙포토]

   
 2500년 전 인류는 어떻게 비슷한 시기 동서양에서 인문의 부흥을 이끌 수 있었을까요. 그 당시엔 지금처럼 국가와 문화권 사이에서 교류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더군다나 동서양은 당시만 해도 서로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인간혁명’은 위의 질문에 대한 고민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인간혁명’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시대부터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폭넓고 광범위 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은 두 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달이고 두 번째는 보편적인 문자의 사용입니다.  
 
 ‘인간혁명’은 과연 2500년 전 동서양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인류의 정신문화를 꽃피우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고대 그리스를 향해 여러분과 함께 여행을 떠나가도록 하죠.  

영화 속에서 아킬레우스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 [영화 트로이]


“아버지, 아킬레우스는 진짜 있었나요? 오디세우스와 헥토르는요.”
 
 소년의 아버지는 그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년에겐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세상의 전부였죠. 가난한 시골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풍족한 삶을 물려주진 못했지만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큰 꿈을 안겨줬습니다.  
 
 매일같이 트로이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를 찾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웅들은 당연히 있고 말구. 저 구름 뒤엔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살았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가보렴.” 그 때부터 소년의 인생 목표는 일리아드의 전설을 찾아가는 거였습니다.
 
루벤스의 그림. 전쟁이 끝나고 전리품을 나누는 아킬레우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구 문명사에서 가장 흔한 문학과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루벤스의 그림. 전쟁이 끝나고 전리품을 나누는 아킬레우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구 문명사에서 가장 흔한 문학과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는 바로 독일의 사업가 겸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년~1890년)의 이야깁니다. 가난했기에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던 슐리만은 젊은 시절 잡화상 점원부터 선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트로이의 유적을 찾아 나서기 위해선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일이 끝나면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고고학을 독학하고 외국어를 습득했죠. 특유의 끈기와 열정으로 서부개척시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슐리만은 큰돈을 벌어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1868년 46세가 됐을 때 그는 드디어 아킬레우스와 영웅들을 만나러 갈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슐리만은 과거 트로이 전쟁의 주 무대였던 터키로 발굴을 떠납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슐리만의 이런 행동은 무모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저 전설일 뿐이라는 게 당시의 통념이었기 때문이죠.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던 트로이 또한 허구의 이야기라고 믿었습니다.

영화 포스터. [영화 트로이]

   
 하지만 발굴 작업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고 나서 슐리만의 꿈은 현실이 되고 맙니다. 오랜 세월 목동과 양떼만 지나다녔던 트루바(트로이의 터키어) 마을의 언덕이 신화 속의 배경이라는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죠. 한 소년의 열정어린 꿈은 신화 속에 잠자던 트로이를 역사적 실재로 깨우고 맙니다.  
 
 이후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Arthur Evans, 1851년∼1941년)가 크레타섬에서 크노소스 왕궁을 발견하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실체를 규명합니다. 이 왕궁은 그리스 신화에서 반인반수(半人半獸)인 미노타우르스가 있던 곳으로 전해내려 옵니다.  
 슐리만과 에번스의 노력으로 30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그리스 초기 문명이 역사 앞에 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 문명이 지중해의 에게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에게 문명(Aegean civilization)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문명의 중심지였던 지역 이름을 따 초기를 크레타 문명, 후기를 미케네 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에게 문명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통해 여러 지역과 교류하며 유럽 역사상 가장 첫 번째의 문명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청동으로 만든 갑옷과 투구, 단검을 사용했다. [영화 트로이]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더욱 수준 높은 문명으로 발전하는데 한계점이 많았죠. 글자가 있었지만 아직 초기 형태의 ‘선형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고 농사 기구처럼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도구 역시 청동으로 제작됐습니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썼던 단검과 투구도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유럽 문명의 시작을 알린 에게 문명은, 더욱 정확히 미케네 문명은 결국 북쪽에서 침입해온 도리아인들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영화 ‘트로이’에 묘사된 것처럼 강력한 군대와 찬란했던 문화를 가진 미케네였지만 도리아인들 앞에선 힘없이 무너진 것이었죠.  
 그 이유는 바로 도리아인이 사용한 무기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선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BC 1200년 전후)으로 처음 철제 무기가 도입됐는데, 이를 그리스에 최초로 가져온 민족이 도리아인이었습니다. 미케네의 청동 무기는 철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뛰어난 전투 능력까지 갖춘 도리아인은 ‘헤라클레스’의 자손이라 불리며 그리스 본토를 점령했죠. 훗날 도리아인의 후손들은 그리스가 도시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영화 ‘300’에 나온 것과 같은 스파르타의 지배층이 됩니다.  
그리스 최초 문명지 [두산백과]

그리스 최초 문명지 [두산백과]

   
 그러나 도리아인은 뛰어난 전투 능력만큼 문화와 지식을 전수하는 데는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미케네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형문자’라는 표기 수단도 갖고 있었고 활발한 해상 활동으로 다양한 문화를 꽃 피웠습니다. 그러나 도리아인은 미케네 문화를 보존하지 않았고, 문자 또한 사용하지 않으면서 당대의 유산을 전승할 수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이 당시를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수백년간 계속된 그리스의 ‘암흑기’는 BC 700~800년경 폴리스라는 도시국가가 출현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평야가 적고 산과 분지가 많은 그리스는 도리아 왕조의 영향력이 무뎌지면서 200여개의 폴리스로 갈라집니다. 폴리스는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는 아고라라고 불리는 넓은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트로이는 서로 다른 시대의 9개 도시 유적이 중첩돼 있어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한 곳이지만 해마다 5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호메로스의 노래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다. [중앙포토]


 폴리스는 도리아인이 갖고 온 철기를 발전시켜 농사에 활용했습니다. 철제 농기구가
확산되면서 폴리스 전체의 생산력이 월등히 높아졌죠. 또 도리아인이 사용하지 않았던 문자를 발전시켜 폴리스의 생활 문화로 삼았습니다. 철기로 인한 생산력의 급증은 현대로 치면 엄청난 기술혁신을 뜻합니다. 문자의 확산은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고요.
 
 위와 같은 특징은 폴리스에 전에는 없던 새로운 계급을 생겨나게 했습니다. 왕-귀족-평민-노예였던 사회구조가 무너지고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 계급이 등장한 거였죠. 시민은 직접 노동을 하지 않지만 노예를 부려 재화를 생산하고, 철기의 사용으로 이전 시대엔 볼 수 없던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됩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한 시민들이 늘면서 시민 모두가 평등하게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고 논의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직접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던 이유는 두 가집니다. 첫째는 노예 노동력의 확보와 생산력 증대로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워진 시민 계급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둘째는 이들이 합리적으로 토론과 논증을 할 줄 알며 이성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시민의 교양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는 거죠.

아테의 파로테논 신전. 수십년째 보수 공사를 하는 가운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리스 역사를 보기위해 찾아 온다. [중앙포토]


 이 때 폴리스의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한 가지 능력을 꼭 갖춰야 했습니다. 바로 토론과 논증 능력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고라는 모든 시민이 모여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시민 개개인은 사안에 따라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 법조인이 돼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폴리스의 미래를 논할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타인들을 설득해야 했죠. 또 개인과 개인 간에, 개인과 사회 간에 갈등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자신의 무죄, 또는 상대의 유죄를 밝힐 수 있는 변론 능력을 갖춰야 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설득과 변론의 기술을 꼭 배워야 했던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새로운 계층이 ‘소피스트(sophist)’입니다. 소피스트는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 폴리스를 돌아다니며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이들은 유산가와 노동자 사이에 자본이 없으면서도 물리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새로운 계층이었죠.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지식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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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전에도 지식인은 있었습니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나 우주의 근원을 원자로 본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보편적 진리와 원칙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다만 실재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찾다 보니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피스트는 절대적인 진리 따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프로타고라스처럼 진리는 상대적이며, 인간의 삶에 쓸모 있는 지식이야 말로 진짜 지식이라고 생각했죠. 특히 소피스트는 시민 계급과 그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변론술을 가르치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르쳤던 학문을 수사학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수사학은 단순히 ‘말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사고와 논증을 통해 인간과 현상에 대한 탐구 활동을 이어 나갔죠. 다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세상의 본질에 대해선 직전의 자연주의 철학자들과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철학뿐만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한 수사학, 문법, 시, 음악 등을 가르치는 전인교육을 실천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소크라테스(Isokrates)입니다.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academia)보다 일찍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의 학교는 일정 장소에서 입학이 허가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수업료를 받고 운영됐습니다. 훗날 그의 학교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함께 그리스의 양대 교육기관이 됐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BC 492년 ~ 448년)의 승리로 큰 번영을 누리고 있던 때입니다. 폴리스의 중심인 아테네는 물질문명 뿐 아니라 정신문화에 있어서도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풍요로움을 누렸습니다. 아테네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다양한 학문이 꽃피었고 시민의 교양은 높아졌으며 민주주의를 통한 정치 체제는 성숙했습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개방의 정신, 치열한 토론 속에도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는 관용의 문화가 그리스의 정신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대 유럽사에서 가장 찬란한 인문의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문 정신의 화룡점정을 이뤘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대화법(산파술)’로 지식을 전달하며 진리를 깨우치도록 했습니다. 소피스트와 달리 보편적인 진리를 강조했던 그는 당대의 내로라했던 소피스트들과 논쟁을 벌였죠. 요즘말로 하면 ‘토론의 달인’이었던 셈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해 토론하고, 이를 통해 상대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대화법’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저작 속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BC 5세기 그리스는 유럽 역사 그 어느 때보다 인문정신의 전성기였습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에서부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로 이어지는 학문의 전성기는 다시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알렉산드로스(마케도니아의 왕)가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하기 까지 그리스는 인문의 부흥기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리스는 쇠망의 길로 들어서죠. 반면 또 다른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세력과 영토를 확장하면서 기원후에 들어서 제국을 건설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중앙으로 권력을 일원화 하죠. 이때 로마로 편입된 그리스는 도시국가 시절만큼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이 같은 일은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졌습니다. BC 5세기를 전후한 춘추전국시대엔 제자백가로 대표되는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이 꽃을 피우죠. 그 때 나타났던 대표적 인물이 공자였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유럽에서 그랬듯 중국에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죠. 당시 중국의 상황은 어땠는지, 그리고 과거의 역사가 4차 혁명으로 불리는 우리의 미래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다음 회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2500년전 중국의 설계자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인문의 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사상가 공자. 영화에서 공자를 연기한 저우룬파(周潤發). [영화 공자]


2500년 전 동서양 문화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오늘 ‘인간혁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지난주 ‘인간혁명’은 서두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 석가모니의 공통점을 물었죠. 3명 모두 세계 4대 성인(예수 포함)으로 꼽히는 분들이고 각기 동서양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위인들입니다.  
 

BC 5세기 동서양이 함께 피운 인문의 꽃
동서양은 어떻게 정신문화 전성기 맞았나

춘추전국시대 공자 등 '제자백가'의 요람
제나라 관중으로부터 학문·이론 퍼져나가
'철기 보급'과 '문자 확산'이 인문발달 촉진

AI 기술혁신 앞둔 지금, 인문정신 되살려야
관용과 개방, 다문화 정신이 미래문명 핵심

 
 또 한 가지 공통점은 3명 모두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신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웠던 주인공들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게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비록 사는 곳은 떨어져 있었지만 이들은 각기 자신이 속한 문명에서 정신문화의 원류가 됐습니다.    
 
 ‘인간혁명’은 BC 5세기 그리스에서 인문의 부흥이 일어났던 이유를 도시국가(폴리스)의 출현과 소피스트의 등장으로 설명했습니다. 200여개의 폴리스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키면서 생산력이 급증하고 ‘시민’이란 계급이 나타났습니다. 그 시민을 키우는 소피스트의 등장으로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이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였죠. 
 
 2500년 전의 그리스처럼 중국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인문과 정신문화가 부흥했습니다. ‘인간혁명’은 동서양에서 어떻게 그런 일들이 동시에 가능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떠나보고자 합니다. 지난주엔 3000년간 신화와 허구 속의 이야기로 잠들어 있던 트로이를 역사적 실체로 끌어낸 슐리만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죠. 오늘은 수 천 년 전 이미 현대의 중국을 설계한 관중(管仲, BC 716년 ~ 645년)의 이야기로 여행을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설계자 관중이 있었다.”
 기원전 8세기 천하의 패권 국가였던 주(周)나라가 쇠퇴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습니다. 황제의 식읍(食邑·봉건제에서 왕이 제후들에게 내려준 봉토)을 받아 각 지역을 다스렸던 영주들이 이제는 스스로 왕을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죠. 지금의 산둥반도에 위치한 제(齊)나라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제후 국가들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를 춘추시대라 부른다. [두산백과]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제후 국가들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를 춘추시대라 부른다. [두산백과]


 당시 제나라에선 폭군 양공이 죽자 왕위 계승을 놓고 규(糾)와 그의 동생 소백(小白)이 쟁탈전을 벌입니다. 당시 규의 참모였던 관중은 그의 명령으로 소백을 암살하려 했죠. 그러나 관중이 쏜 화살이 허리띠에 맞은 소백은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이 일로 전세를 역전시킨 소백은 왕위에 오르고 규는 자결합니다.
 
 그리고 왕을 살해하려 했던 관중은 사형 위기에 처하죠. 그 때 소백의 한 참모가 말합니다. “전하께서 제나라에 만족한다면 신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 싶다면 관중 외에는 인물이 없을 겁니다. 부디 관중을 등용하십시오.”
 
 참모의 의견을 중시했던 소백은 관중을 거두어 자기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후 관중은 자신이 죽이고자 했던 사람의 휘하에서 재상이 됐고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첫 패권을 쥔 나라로 등극합니다. 당시 자신의 암살자를 오른팔로 만든 소백이 바로 그 유명한 제나라의 명군주 환공(桓公, BC 685년 ~ 643년)입니다.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든 환공과 그를 도운 명재상 관중. [네이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든 환공과 그를 도운 명재상 관중. [네이버]


 그렇다면 관중을 소백에게 천거했던 그 참모는 누굴까요?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 또한 내놔야 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그 참모는 관중의 오랜 친구였던 포숙아(鮑叔牙)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우정을 빗대 ‘관포지교(管鮑之交)’라 부르고 있죠. 관중은 포숙아를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 시절 함께 장사를 하면서 나는 내 몫을 더 많이 챙겼지만 포숙아는 날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세 번이나 패하고 도망쳤지만 그는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兒也).”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 [네이버]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 [네이버]


 한국에선 주로 관중을 우정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큽니다. 중국 고대사의 전문가이면서 ‘춘추전국이야기(1~11권)’를 쓴 공원국 작가는 관중을 ‘중국의 설계자’라고 표현하고 있죠. 정치와 경제, 사법, 행정에 이르기까지 중국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관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표현도 그가 처음 구분해 놓은 것입니다. 다만 관중은 계급을 나누고 차별을 하기 위해 이렇게 구분한 것이 아니라 직업을 세분화 해 효율성을 높이려 했던 의도였습니다. 즉,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키워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농공상을 나눠 놓은 것이었죠.  
 
 관중은 재상이 되어 조세개혁을 단행하고 정전(井田·토지를 9등분으로 나눠 8가구가 한 등분씩 소유하고, 가운데 필지는 공동 경작해 수확물을 국가에 바치는 방식)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토지 이용률을 높이는 한편 세금을 줄였습니다. 또 상인 출신이었던 관중은 바다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상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가 널리 유통됐습니다.
중국 산둥성 쯔보시 관중기념관 앞에 있는 관중의 상. [네이버]

중국 산둥성 쯔보시 관중기념관 앞에 있는 관중의 상. [네이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때부터 농사에서 철제 농기구가 확산되고 ‘우경(牛耕·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것)’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석기나 청동기로는 불가능했던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생산력이 급증한 것이었죠. 특히 관중은 제나라에서 생산되는 철의 사용량을 늘리며 기술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업이 발달하니 국가의 경제력이 강해지고 나라의 재정 또한 튼튼해졌습니다. 제나라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은 곧 이웃나라로 퍼졌습니다. 관중이 설계한 국가의 체제, 사회 구조 등은 곧 춘추전국시대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죠. 당시 국가들의 대부분이 철기구와 우경 등 기술혁신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됐고, 상업의 발달로 다양한 문물이 교류되면서 춘추전국시대는 문화적 융성기를 맞이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와 함께 농사에 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급증했다. [네이버]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와 함께 농사에 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급증했다. [네이버]


 이때 처음 생겨난 계층이 바로 ‘사(士)’입니다. 원래 주나라 시대의 계급 구조는 지배계층인 천자와 제후, 그리고 피지배 계층인 서인으로 나뉘어 있었죠. 제나라 시대엔 제후와 그의 혈족인 대부로 세분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토지를 갖고 있는 유산 계급이 위에 있었고, 그 아래에는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며 조세를 바치는 평민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관중이 ‘사농공상’이라는 직업 구분을 했던 것처럼 평민 중에서 ‘사(士)’라는 계층이 처음 생겨납니다. 제후와 대부처럼 토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귀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 조세를 바치는 일반 서인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력이 급증하면서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죠.
춘추전국시대엔 상업과 유통이 발달해 다양한 화폐가 출토됐다. [네이버]

춘추전국시대엔 상업과 유통이 발달해 다양한 화폐가 출토됐다. [네이버]


 이들은 중국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난 ‘지식인’ 집단이었습니다. 제후를 뒷받침해 지식을 전하기도 하고, 직접 관료를 맡아 행정을 펴기도 합니다. 공자가 활동했던 BC 5세기에는 이 같은 ‘사(士)’ 집단의 규모가 매우 커지죠. 많게는 100명씩 몰려다니면서 제후나 대부의 집에 머물면서 귀족 자제들의 선생이 되기도 했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제자백가’의 출현입니다.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상들이 이 때 나왔습니다. 인과 의, 예 등 사람의 본성과 도덕을 강조한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 엄격한 법과 제도를 중시한 한비자의 법가, 자연과 무위를 강조하는 노자와 장자의 도가, 평화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묵자의 묵가 등이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공자는 제자백가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유럽에 소크라테스가 있다면 아시아엔 공자가 있죠. '군자'를 강조하는 그의 정치사상은 훗날 맹자로 이어지며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체계의 원류가 됩니다. 특히 조선은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받아들인 신진사대부가 주축이 돼 세운 나라로 500년간 그의 가르침을 믿고 따릅니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체제를 만든 것이 관중이라면, 그 안에 혼을 불어 넣은 건 공자입니다.  
노나라의 공자는 전국을 떠돌며 그의 사상을 전파한다. [영화 공자]

노나라의 공자는 전국을 떠돌며 그의 사상을 전파한다. [영화 공자]


  제자백가는 지난주 살펴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과 비슷합니다. 철기의 발달로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문자의 확산으로 지식전승의 수단이 자리 잡으면서 그리스와 중국 모두 지식인이 생겨난 거였죠. 지식인이 만들어낸 지식과 학문은 문자를 통해 전달되면서 문명 발달의 가속화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와 중국은 서로 교류를 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 농사에서 철기를 도입하고 문자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식인 집단이 전문적으로 세상의 근원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거죠. 그렇다 보니 비슷한 생각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탈레스와 관중은 세상의 근원을 모두 ‘물’이라고 했죠. 정치지도자의 이상으로 현명한 철인을 제시한 플라톤이나 인과 예를 갖춘 군자를 말하는 공자는 일맥상통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철기의 확산으로 전쟁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농업 생산력 또한 높아졌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철기의 확산으로 전쟁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농업 생산력 또한 높아졌다. [영화 공자]


 이처럼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은 전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활발한 교역을 통해 다양한 문물을 교류하며 인문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백가로 꽃피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정신문화는 BC 221년 진(秦)의 통일과 함께 암흑의 시대로 빠져듭니다. ‘분서갱유’와 같은 학문과 사상의 말살로 융성했던 인문 정신과 문화가 후퇴한 것이죠.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역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의 발달은 혁명적인 문명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새로운 문명은 인간의 삶과 사회 제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하게 만들고요. 개방과 관용의 정신을 토대로 다양한 생각이 오가며 성숙한 담론이 모아지면 그 시대의 문명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성장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했을 때, 다양성이 억압되고 획일성이 강조될 때 그 사회는 곧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죠.

 4차 혁명으로 불리는 우리의 미래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변했던 2500년 전 동서양보다 훨씬 큰 기술혁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문자’에 한정됐던 지식과 문화의 소통 수단은 동영상과 홀로그램, 가상현실 등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고요. 국가 간 장벽은 낮아지고 교류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제자백가와 소피스트가 그랬듯 한 단계 더 높은 정신문화와 인문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춰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과거 지혜로운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도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 개개인의 의식은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정신문화와 조화시킬 수 있을 만큼 성숙한지, 우리의 제도는 차별과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기회를 통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만큼 숙의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비록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살았던 이들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훨씬 많을지 몰라도, 정작 우리가 그들보다 더욱 지혜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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