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행복

[스크랩] 그런 길은 없다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good해월 2017. 12. 8. 09:42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 메기 베드로 시안-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예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




♧ 너무 고마워요 - 김성예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 아내의 화답시


평생을 시골과 소도시 공주의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한 나태주 시인은

한 때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았었다.

병석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보다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컷기에
그 마음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는 내용의 시를 마지막 편지처럼 썼다.
그리고 아내는 그 시에 답장을 썼다.


사진:박알미
음악 : 그대 떠난후 - 김동규
편집 : June

 


 


출처 : 돌 굴러가유~~
글쓴이 : 돌 굴러가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