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밥 지어 봤다… 청개구리 식당
한 해 약 5만명이 학교를 떠난다. 이들은 어디로 갈까. 대안학교나 홈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또래들과 어울려 뒷골목으로 흘러간다. 경찰은 형법을 어긴 14~18세의 청소년을 '범죄 소년'이라고 칭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5년간 범죄 소년 검거 인원은 약 39만명에 이른다.
그들이 많이 모이는 곳 중 하나인 경기도 부천역. 그 골목에는 이 청소년들에게 '공짜 밥'과 쉴 곳을 주는 식당이 있다. '아무튼, 주말'이 일일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며 그들을 만났다.
잔소리 안 하니까 밥만 먹고 가
지난 22일 오후 지하철 1호선 부천역 인근에 있는 '청개구리 식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날짜마다 메뉴가 쓰여 있는 화이트보드가 보였다. 백반,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이날은 '닭갈비 데이'였다. 창가 쪽에는 4인용 식탁 10여개, 건물 안쪽에는 부엌이 있었다. 누워 쉴 수 있는 평상과 6~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눈에 들어왔다. 이정아(52) 청개구리 식당 대표를 도와 20인분가량의 밥을 짓고, 닭갈비를 볶았다. 디저트인 사과를 깎을 때쯤 학생들이 한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후 5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여학생 한 명이 들어오며 "사모님, 오늘 ○○오빠 와요?"라고 물었다. "모르지 나야. 지금쯤이면 오지 않아? 전화해볼까?" 이 대표는 아이들에게 '사모님'이라고 불린다. 높은 굽의 하이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 2~3개의 피어싱.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좀 노는'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대표는 "저 중 한 명은 아마 오늘 가출한 아이일 것"이라며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두꺼운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배식이 시작됐다. 기자는 닭갈비와 밥을 맡았다. 이 대표는 정량을 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늦게 오는 아이들이 먹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농담에 웃었지만 속으로는 동날까 걱정했다. 배식을 받은 아이들은 식탁으로 가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아이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밥을 먹었다. 5명은 "PC방에 가자" "○○오빠가 신길역으로 오라고 했다" 등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은 혼자 휴대폰과 접시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학생은 "별다른 간섭이 없고 편하게 밥만 먹고 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도 있었다. 평상에 걸터앉아 있거나 고데기로 머리를 마는 아이들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그릇을 들고 와 직접 설거지를 했다. 청개구리 식당의 규칙 중 하나다.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맛있게 먹었는지' 등을 물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예"라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한 자원봉사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수줍어서 그런 것"이라 했다. 최소한 4~6개월간 보면 아이들이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온다고 한다.
식당 한쪽에서는 지점토 공예 수업이 한창이었다. 많은 시민단체가 식당에 방문해 이런 식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날은 도예 봉사 단체 '통합예술나눔터'의 이정현 도예가가 왔다. 4명의 아이들이 모여 지점토로 주먹만 한 크기의 공룡, 도마뱀, 대변 모양을 만들었다. 창가에는 학생들이 만든 자동차, 비행기, 원뿔 모양 등 지점토 10여점이 놓여 있었다.
오후 7시 30분 닭갈비가 동났다. 배식에 실패했다. 많이 달라는 아이들에게 반 숟갈씩 더 퍼준 게 패인이었다. 이 대표는 당황한 기색 없이 남은 닭갈비 양념에 밥을 볶았다. 덕분에 나중에 온 3명의 아이들에게도 식사를 줄 수 있었다. 음식이 남지 않아 식기 설거지를 하고 식당 청소를 하니 아르바이트 체험은 끝이 났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기자의 말에 이 대표는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답했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체험에 임했지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과한 배려에는 부담을 느껴 오히려 멀어진다"며 "청개구리 식당은 갈 데 없는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학생들만큼 자원봉사자도 찾아
청개구리 식당은 2011년 7월 포장마차로 문을 열었다. 2016년 더 많은 아이를 들이기 위해 스토리펀딩을 통해 부천역 인근 건물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하루 평균 20명이 온다. 학기 중 몰릴 때는 40명 넘게 온다.
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도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에서 잠을 자고 오후에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늘 물건을 집어던져 집에는 들어가기 싫다는 학생도 있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늘 웃고 있지만, 그 뒤에는 상처가 하나씩 있다"고 했다.
청소년을 돕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찾는다. 이들은 "아이들을 만나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비영리 시민단체 '위기 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은 2016년 식당 건물 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 단체의 최승주 대표는 수시로 식당에 드나들며 아이들에게 미혼모 지원, 주짓수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천시 상담복지센터에서는 청소년 대상 전문 상담사를 1주일에 한 번씩 이 식당에 방문토록 하고 있다. 원하는 청소년에게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개인 자원봉사자들도 모인다. 부천역 인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백모(41)씨는 4년째 봉사 중이다. 길에서 우연히 천막을 보고 들어와 지금까지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백씨는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백씨와 같이 지금까지 식당을 거쳐 간 개인 봉사자들은 약 40명에 이른다.
학교 밖 청소년 센터의 새 모델
학교를 떠난 청소년은 적(籍)이 없다. 자기 의지로 지원센터 등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돈이 다 떨어지면 절도범, 보이스피싱 행동책, 성매매 알선업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2016년 기준 약 35만명으로 추산한다.
약 20년간 청소년을 위해 봉사해온 이 대표는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은 '그때 누군가 말려줬으면'이라고 한다"면서 "일단 아이들이 식당을 자주 찾게 해야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자원봉사자에게는 불문율이 있다. '왜 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 요청을 했을 때 이 대표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사연을 캐묻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집에는 왜 안 들어가냐" "술·담배는 하지 마라" 같은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미혼모, 범죄에 휘말린 아이 등이 보이면 대화하고 상담센터에 연계해준다.
전문가들은 청개구리 식당 같은 ' 학교 밖 청소년 플랫폼'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야 적합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무료 배식하는 곳은 많지만, 만남의 광장 기능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고려대 권대봉 명예교수는 "청소년 지원은 친밀감을 쌓는 게 우선"이라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접촉 면적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많이 모이는 곳 중 하나인 경기도 부천역. 그 골목에는 이 청소년들에게 '공짜 밥'과 쉴 곳을 주는 식당이 있다. '아무튼, 주말'이 일일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며 그들을 만났다.
잔소리 안 하니까 밥만 먹고 가
지난 22일 오후 지하철 1호선 부천역 인근에 있는 '청개구리 식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날짜마다 메뉴가 쓰여 있는 화이트보드가 보였다. 백반,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이날은 '닭갈비 데이'였다. 창가 쪽에는 4인용 식탁 10여개, 건물 안쪽에는 부엌이 있었다. 누워 쉴 수 있는 평상과 6~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눈에 들어왔다. 이정아(52) 청개구리 식당 대표를 도와 20인분가량의 밥을 짓고, 닭갈비를 볶았다. 디저트인 사과를 깎을 때쯤 학생들이 한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후 5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여학생 한 명이 들어오며 "사모님, 오늘 ○○오빠 와요?"라고 물었다. "모르지 나야. 지금쯤이면 오지 않아? 전화해볼까?" 이 대표는 아이들에게 '사모님'이라고 불린다. 높은 굽의 하이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 2~3개의 피어싱.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좀 노는'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대표는 "저 중 한 명은 아마 오늘 가출한 아이일 것"이라며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두꺼운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배식이 시작됐다. 기자는 닭갈비와 밥을 맡았다. 이 대표는 정량을 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늦게 오는 아이들이 먹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농담에 웃었지만 속으로는 동날까 걱정했다. 배식을 받은 아이들은 식탁으로 가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아이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밥을 먹었다. 5명은 "PC방에 가자" "○○오빠가 신길역으로 오라고 했다" 등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은 혼자 휴대폰과 접시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학생은 "별다른 간섭이 없고 편하게 밥만 먹고 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도 있었다. 평상에 걸터앉아 있거나 고데기로 머리를 마는 아이들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그릇을 들고 와 직접 설거지를 했다. 청개구리 식당의 규칙 중 하나다.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맛있게 먹었는지' 등을 물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예"라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한 자원봉사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수줍어서 그런 것"이라 했다. 최소한 4~6개월간 보면 아이들이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온다고 한다.
식당 한쪽에서는 지점토 공예 수업이 한창이었다. 많은 시민단체가 식당에 방문해 이런 식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날은 도예 봉사 단체 '통합예술나눔터'의 이정현 도예가가 왔다. 4명의 아이들이 모여 지점토로 주먹만 한 크기의 공룡, 도마뱀, 대변 모양을 만들었다. 창가에는 학생들이 만든 자동차, 비행기, 원뿔 모양 등 지점토 10여점이 놓여 있었다.
오후 7시 30분 닭갈비가 동났다. 배식에 실패했다. 많이 달라는 아이들에게 반 숟갈씩 더 퍼준 게 패인이었다. 이 대표는 당황한 기색 없이 남은 닭갈비 양념에 밥을 볶았다. 덕분에 나중에 온 3명의 아이들에게도 식사를 줄 수 있었다. 음식이 남지 않아 식기 설거지를 하고 식당 청소를 하니 아르바이트 체험은 끝이 났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기자의 말에 이 대표는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답했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체험에 임했지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과한 배려에는 부담을 느껴 오히려 멀어진다"며 "청개구리 식당은 갈 데 없는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학생들만큼 자원봉사자도 찾아
청개구리 식당은 2011년 7월 포장마차로 문을 열었다. 2016년 더 많은 아이를 들이기 위해 스토리펀딩을 통해 부천역 인근 건물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하루 평균 20명이 온다. 학기 중 몰릴 때는 40명 넘게 온다.
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도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에서 잠을 자고 오후에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늘 물건을 집어던져 집에는 들어가기 싫다는 학생도 있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늘 웃고 있지만, 그 뒤에는 상처가 하나씩 있다"고 했다.
청소년을 돕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찾는다. 이들은 "아이들을 만나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비영리 시민단체 '위기 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은 2016년 식당 건물 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 단체의 최승주 대표는 수시로 식당에 드나들며 아이들에게 미혼모 지원, 주짓수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천시 상담복지센터에서는 청소년 대상 전문 상담사를 1주일에 한 번씩 이 식당에 방문토록 하고 있다. 원하는 청소년에게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개인 자원봉사자들도 모인다. 부천역 인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백모(41)씨는 4년째 봉사 중이다. 길에서 우연히 천막을 보고 들어와 지금까지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백씨는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백씨와 같이 지금까지 식당을 거쳐 간 개인 봉사자들은 약 40명에 이른다.
학교 밖 청소년 센터의 새 모델
학교를 떠난 청소년은 적(籍)이 없다. 자기 의지로 지원센터 등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돈이 다 떨어지면 절도범, 보이스피싱 행동책, 성매매 알선업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2016년 기준 약 35만명으로 추산한다.
약 20년간 청소년을 위해 봉사해온 이 대표는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은 '그때 누군가 말려줬으면'이라고 한다"면서 "일단 아이들이 식당을 자주 찾게 해야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자원봉사자에게는 불문율이 있다. '왜 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 요청을 했을 때 이 대표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사연을 캐묻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집에는 왜 안 들어가냐" "술·담배는 하지 마라" 같은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미혼모, 범죄에 휘말린 아이 등이 보이면 대화하고 상담센터에 연계해준다.
전문가들은 청개구리 식당 같은 ' 학교 밖 청소년 플랫폼'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야 적합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무료 배식하는 곳은 많지만, 만남의 광장 기능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고려대 권대봉 명예교수는 "청소년 지원은 친밀감을 쌓는 게 우선"이라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접촉 면적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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