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개천절 계기교육 현직연수 자료
제목 : 개천절의 의미 및 단군조선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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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06. 10. 2
발표자 : 한 관 흠
대 상 : 전 교 사
율 면 고 등 학 교
1. 개천절의 유래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10월 3일 거행되는 우리나라 국경일의 하나. 서기전 2333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도, 이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의 뜻을 받아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하여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겨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 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에서 비롯한다. 즉, 1900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羅喆: 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다시 敎門을 엶)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하였고, 충칭(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 양력 환용(換用) 심의회’의 심의결과 음, 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하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 이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檀君崇慕團體)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2. 개천절 노래
정인보 작사 / 김성태 작곡
1절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2절 백두산 높은 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텄다
이 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이 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3절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목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3. 개천절 우리의 자세
가. 한민족 개국기념일인 개천절의 참의미 되새김
나. 우리 집 태극기 게양 및 우리 마을 태극기 게양
다. 외적의 침략에 한민족의 하나로 뭉쳤던 힘의 근원
라. 한글의 우수성과 고대한글 가림토에 대해 알기
<단군조선 관련 잘못된 인식>
1. 신화는 실존 역사에 근거
◇ 단군왕검-곰이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합
◇ 고구려 주몽 -알에서 태어남
◇ 신라 박혁거세-알에서 태어남
◇ 가야 김수로왕-알에서 태어남
☞ 각국의 신화가 이처럼 꾸며진 것은 당시의 믿음과 관련하여 대대손손 신성시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임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것은 일본 어용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믿는 특정 종교인들의 잘못된 해석에서 발생한 것임
2. 대통령들의 개천행사 불참 이유는?
◇ 역사적 기록을 종교로 치부하여 국가 원수가 특정 종교인의 표를 의식해 민족적 행사에 불참
⇒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정체성 결여 현상임
◇ 일본 고이즈미나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비교
⇒ 야수쿠니 신사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의 위패를 모은 곳으로 우리 역사의 기원인 단군 왕검의 개국기념일을 축하하는 자리와는 그 의미가 다름
◇ 대종교 계통의 특정 종교 행사로 보는 견해
⇒ 국가 주관으로 거행하던 행사를 특정 종교에서 신격화하여 숭배한다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을 종교적 사실로 폄하하는 것은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적 정통성 및 정체성을 깎아내리는 행위임
☞ 공통점 : 한일 양정상들의 참배냐 아니냐에 관한 논란은 정치적 소신보다는 포플리즘에 기인한 국민 여론의 환심 사기에 불과함
3. 주변국의 역사 왜곡의 빌미 제공
◇ 단군조선 관련 서적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본과 조선은 조상이 같다는 이론으로 그 의도는 일본보다 2000여년 앞서는 단군조선을 없애기 위한 의도적 이론임)을 내세운 조선사편수회의 위서라는 실증 사학이라는 미명하에 단군조선 관련 서적을 모두 위서(僞書)라고 단정하고 추상적 신화 형태로 기술된 삼국유사의 한 글자를 위조해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 함
☞ 그러나 현재의 역사 교과서에도 서지학적 문헌 검증 없이 일제에 의해 왜곡된 삼국유사 正德本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
◇ 중국의 동북공정도 우리가 단군조선을 우리의 뿌리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정부에서의 단군조선에 대한 무관심과 미온적인 대책이 주변국의 역사왜곡 빌미를 제공함
4. 단군은 한 명이 아니다.
◇ 단군의 계보
1대 왕검-2대 단군 부루(강화도 삼랑성 축조)-3대 단군 가륵(고대 한글 가림토 38자 창제)-47대 고열가
◇ 단군 관련 서적 :
- 단군세기, 신단민사, 규원사화, 제왕연대력, 환단고기, 지공기, 조대기 등 -------- 1대-47대 단군의 역년 언급한 책들
- 삼국유사-불교적 신화로 각색되어 일본인에 의해 왜곡되어 신화로 날조되는 데 이용됨
- 삼국사기-김부식에 의해 의도적으로 반도 사관으로 일관함.
◇ 단군의 의미?
檀-박달나무 단, 君-임금 군 ⇒밝달 임금(밝은 땅의 임금)
밝은 땅⇒환국, 한국, 조선, 해가 뜨는 나라, 동국, 배달
배달겨레⇒밝달>배달 (‘밝’이 ‘배’로 전음된 예 : 박고개>배오개)
아사달 ⇒ 덕군이 계시어 환하게 감화시키는 땅, 즉 임금이 머무르는 땅을 일컬음(아사 : 아침, 광명 달 : 땅, 나라)
땅을 뜻하는 말?
부여, 고구려 -달(아사달)
신라 - 벌(서라벌 또는 벌--새벽, 아침, 광명, 벌-땅, 나라)
백제 -부리(수부리, 소부리 : 소-새벽, 아침, 광명 부리-땅, 나라)
5. 단군조선 47대 인정할 때 풀리는 수수께끼
◇ 고대 한글의 문제 해결
☞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설 일본인 학자에 의해 정립
- 처음엔 창살을 모방한 창살문자라 비난하다가 일본에서 발견된 고대 한글을 발견한 후, 아히루 문자와 훈민정음이 친자관계에 있다고 주장함.(親:아버지, 즉 일본의 아히루 문자를 뜻함, 子: 아들, 즉 우리의 훈민정음을 뜻함)
- 정사(正史)인 세종실록에는 “대개 그 근본은 새로운 자가 아니라 古 전자(篆字) 모방했다.”함
- 단군기에는 3대 단군 가륵 임금 때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만들었다고 함.
- 일본의 아히루 신사에 고대 한글인 아히루 문자(708년) 발견 및 대마도에서 7세기로 추정되는 한글 문양이 있는 청동 거울 발견됨.
-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 있는 한글 모양의 글자들도 단군 조선 후대의 가락국 허황후가 인도사람임을 고려하면 일본의 고대한글처럼 문화 교류 및 우리 민족의 이주민 집단 거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 중국 지역에서 발견되는 환웅 하강 벽화들의 역사적 근거가 우리 민족에 뿌리가 있음을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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