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선 탔던 70代
"北의 환영인파, 추운날에도 양말 못신어…
속은줄 알았죠"
입력 : 2016.03.14 05:59 | 수정 : 2016.03.14 06:01
"연필로 편지쓰면 오지말라는 뜻"
일부는 日 가족과 미리 암호 정해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3/14/2016031400341_0.jpg)
재일동포 가와사끼 에이꼬씨
재일동포 가와사끼 에이꼬(川崎榮子·73)씨는 17살이던 1960년 일본 니가타 항에서 청진행 북송선(北送船)에 올랐다. 1959~1984년까지 재일동포 9만3440명이 북송선을 탔다. 조총련 전문가 김찬정(79)씨는 "조총련의 가장 극악한 행위는 동포들을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속여 북한에 보낸 것과 그들을 '인질'로 한 대북 송금"이라고 했다.
"지상낙원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잘못 온 걸 알았어요. 청진항은 추웠어요. 수천 명이 환영 나왔는데 양말 신은 사람이 없었어요." 한국보다 북한이 잘사는 시기였다. 동포 사회도 민단보다 조총련을 신뢰했다. 조총련과 일본 적십자가 공동으로 북송 사업을 했다. 일본 언론도 좌·우 모두 환영했다. 아사히신문은 "귀환 희망자가 늘어난 건 '완전 취업·생활 보장'이라고 알려진 북한의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상께이신문은 "1000명 가까운 귀환자를 따뜻한 방에 수용하는 모국의 경제력에 (북송된 사람들이) 안심했다"고 썼다.
가와사끼씨는 부모에게 '따라오면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은 출발 전에 미리 '연필로 편지를 쓰면 오지 말라는 뜻, 펜으로 쓰면 오라는 뜻'이라고 암호를 정해뒀다고 했다. 가와사끼씨네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조총련을 믿었다. 빙빙 돌려쓴 편지를 가족이 용케 알아듣고 북한에 오지 않았다.
"지상낙원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잘못 온 걸 알았어요. 청진항은 추웠어요. 수천 명이 환영 나왔는데 양말 신은 사람이 없었어요." 한국보다 북한이 잘사는 시기였다. 동포 사회도 민단보다 조총련을 신뢰했다. 조총련과 일본 적십자가 공동으로 북송 사업을 했다. 일본 언론도 좌·우 모두 환영했다. 아사히신문은 "귀환 희망자가 늘어난 건 '완전 취업·생활 보장'이라고 알려진 북한의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상께이신문은 "1000명 가까운 귀환자를 따뜻한 방에 수용하는 모국의 경제력에 (북송된 사람들이) 안심했다"고 썼다.
가와사끼씨는 부모에게 '따라오면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은 출발 전에 미리 '연필로 편지를 쓰면 오지 말라는 뜻, 펜으로 쓰면 오라는 뜻'이라고 암호를 정해뒀다고 했다. 가와사끼씨네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조총련을 믿었다. 빙빙 돌려쓴 편지를 가족이 용케 알아듣고 북한에 오지 않았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3/14/2016031400341_1.jpg)
이후 수십년간 가와사끼씨 같은 북송 동포들은 일본 내 가족들과 난수표 같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북한에서 '서른살 된 게이꼬가 보고 싶다'는 편지가 오면, 가족들이 '우리 중엔 게이꼬가 없는데…' 고민하다가 [세이꼬 시계(時計)]라고 넘겨짚고 [세이꼬 시계] 30개를 사 보내는 식이었다.
가와사끼씨는 2003년 탈북(脫北)했다. 43년간 북한에 살며 두 가지를 늘 새겼다. '입 없는 사람처럼 산다.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한 사람은 체제에 불만이 있다고 간주돼 남은 가족이 모진 일을 겪었다. 북한에서 사상범은 주로 새벽 2~3시 체포됐다. 심야에 어느 집 앞에 트럭이 서면, 그날 그 집 식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새 가슴 졸이다 동이 트면 그제야 '오늘 하루 넘겼다'는 안도감에 잠이 들었다.
가와사끼씨는 "조총련과 싸우기 위해서" 일본행을 선택했다. 그는 유엔에 자기 경험을 증언했고, 조총련 반대 강연과 데모를 계속하고 있다.
가와사끼씨는 2003년 탈북(脫北)했다. 43년간 북한에 살며 두 가지를 늘 새겼다. '입 없는 사람처럼 산다.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한 사람은 체제에 불만이 있다고 간주돼 남은 가족이 모진 일을 겪었다. 북한에서 사상범은 주로 새벽 2~3시 체포됐다. 심야에 어느 집 앞에 트럭이 서면, 그날 그 집 식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새 가슴 졸이다 동이 트면 그제야 '오늘 하루 넘겼다'는 안도감에 잠이 들었다.
가와사끼씨는 "조총련과 싸우기 위해서" 일본행을 선택했다. 그는 유엔에 자기 경험을 증언했고, 조총련 반대 강연과 데모를 계속하고 있다.
출처 : 맹꽁이의 찬양
글쓴이 : 맹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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